봄비 온 뒤 풀빛처럼

카테고리 없음

상부상조

이쁜준서 2023. 1. 10. 08:59


시골 오일장으로 즉석 어묵을 만들어 팔고, 반찬용 어묵은
칠성시장이란 곳에서 만들어 놓은 것을
도매로 사고, 만두도
만들어 놓은 것을 사고, 튀김어묵 반죽도
한 박스에 20Kg이어서 번쩍 들고 차에 올리는 일이 벅차다 했다.

60대 후반의 할아버지 한분이 그 새벽시장에 나와서 도와 달라는 말이 없어도 이 사람 저 사람 차에
짐을 올리는 일을 도와 준다고 했다.

70대 할머니가 되고 보니 그 할아버지 도움을 받으면 수월하니 장사하고 남은
것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넉넉하니 드리기도 하고,
겨울 새벽의 찬 공기에 따끈따끈한 커피를 사드리기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고마워서 돈을 조금 주기로 했다고.
도움을 받았다고 다들 인사를 하는 것도 아닌데 상관 없이 도와 주신다 했다.

집에서 새벽 4시 반경이면 나가 도소매 시장에서 물건을 받아서 장이 서는 곳에서 전을 펴면 07시 무렵이라 했다.
40대 젊은 남자들이
해장도 못하고 빈속으로 점심 시간 앉은 자리로 밥이 배달 될 때까지 빈속인 것이
안타까워 어떤 때는돼지등뼈를 사 고와서 준비 하기도 하고,
생선찌개 거리를,
아무것도 없으면,
반찬용 어묵을 끓이고 그 국물에 물국수
넣고 끓여서 먹으면
특히 날씨가 추우면
속도 든든하고,
전날 먹은 숙취도 해장되고 맏 누나가 동생들 거두어 먹이듯 한다고 했다.
먹고 난 그릇은 그대로 챙겨 집으로 가지고 와 설겆이까지 해야 한다고.
내가 듣기로는 일방적인데도 누나 누나 하면서 물질로는 챙기는 것은 없다 해도
심정적으로는 상부상조 이다.
몇달 장사를 하지 않다가 오일장에 다시 간 첫날 그 40대 젊은
장꾼들이 누나가 없으니 장이 다 빈것 같고 우리 속도 빈채로 지냈다고 하더라고.

상부상조란 예전 우리가 아기적 이전부터 시골에서는 그렇게들 살아 왔다.

초등학생 때 시골에서 살 때 큰어머님이 돌아 가셨다.
작은 집성촌이 었는데 가을 벼농사 추수한것을 집으로 들이는 일을 할 때였는데도 초상이 났다하니
마을 어느 집으로
아지매들이 모여서
팥죽을 끓이고,
초상이 난 날은 팥죽을 끓인다고,
다른 아지매들은 또 우리 집으로 와서
상여가 나가는 날 까지 집안 일을 해 주셨다.
시골은 집성촌이였고, 상부상조로 생활들을 했다.
품앗이가 제일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