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콩한쪼가리도 열둘이(12명) 나눌수 있다

이쁜준서 2022. 7. 17. 06:54

발렌타이자스민
이꽃을 친구가 삽목해서 가져다 준 것이고,
옆에 보이는 유럽제라늄도 친구가
삽목을 해서 몇몇 곳 나누었는데,
삽목이 않된다면서 어미인 본 화분을
준 것이고,
저가 삽목을 해서 나우었지요.


블로그 벗님들께서는 준서할미가 어린시절 시골에서 자랐다는 것을 아십니다.
동네가 친척들이어서 할머니들은 어린 우리들을 다 손주들로 대 하셨습니다.
지나가면 간식거리로 먹을 것이 있으면 불러 한 입거리밖에 되지 않아도 주셨습니다.
담으로 옆집에는 아버지 종숙모가 되시는 할머니께서 맏이는 결혼해 부산에서 살고,
남매를 데리고 사시는데 제게는 고모이고 아재로 불렸습니다.
부산에서 형이 있으니 농비도 걱정이 없었고, 그 마을에서 그 또래 남자 아이들이 몇이 있어도
아무도 중학교를 가지 않았는데, 그 아재는 5리 걸어서 올라 가면 기차역이 있고,
학교는 경주에 있고, 우리 마을에서 유일한 중학생이였습니다.

어느 날은 산딸기가 익어갈 무렵이었는데, 우리 마당을 기웃거리다 나를 불러 내었습니다.
기차역에서 내려 5리길을 걸어서 집으로 오는 길에는 층계논이 좀 있고,
야산이 있는데, 그 야산으로 들어가서 산딸기를 가득 따서 저를 주었지요.
저 짝에 가서 혼자 먹고 도시락은 우리 집에 가져다 놓아라 했지요.
저가 초등학교 4학년 이고, 저보다 너댓살을 많은 아재 였습니다.
부산에서 와서 소풀 먹이러 가는데도 소가 겁이 나고, 소는 겁을 내는 작은 딸아이 말을 듣지 않고,
풀이 자라서 쇠죽 솥에 넣는다고 풀을 낫으로 베러 가서는 손가락 베어 오는 일이 잦고
담 이쪽 저쪽인 집이라 그 이야기는 그 쪽 할머니께서는 환이 알고 계시고,
아재는 그런 저가 애처럽게 보여서 위로 한다고 그리 했을 겁니다.

고광나무꽃
화훼단지에서 팔기는 하는데, 삽목한 작은 포트 없고,
제법 키워서 몸값이 15,000원에서 20,000원을 해서
그 정도 가치는 아니다 하고 사지 못했지요.
먼곳에서 어는 해 늦가을 나무 두개를 보내 주셔서
이웃 친구네 한 나무를 주었고,
정성을 다해 그 이듬해 꽃을 보았고,
올해가 3년차였고,
삽목을 해서 두 친구에게 나누었지요.
삽목 하나는 절에 갔는데,
그 공기 좋고 넓은 정원에서 앞으로 아주 멋진 나무로 자랄 것입니다.
보내주신 아름다운 맘과
제가 또 키워서 꽃을 보고,
삽목으로 나누기도 했지요.
꽃을 주고 받는 서로 나누는 맘을
참 아름다운 것입니다.



할머니께서 나누어 먹어야 한다는 말씀으로 콩 한쪼가리도 12명이 나누어 먹는다 하셨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콩 한알이 두쪽으로 분리 되니 그 한 쪽으로 12번 베어 먹어 보니 되기는 했습니다.
동네 땅이 평평하지 않아서 우리가 사는 곳에는 일곱 가구가 있었고,
또 올라가면 그 정도 있었고, 개울 건너면 또 그 정도 있었고, 철길 건너 또 그 정도 있었지 싶습니다.
그러니 우리 동네를 밭가운데라 했지요. 그나마 평평한 곳이였지요.
그 일곱집은 정말로 한 집처럼 작은 음식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우리 아이들은 두서너살 차이가 지고, 아이들은 모여서 십여리 학교길을 가고 오고 했지요.
찐살을 하는 철에는 집에서 찐살을 아마도 엄니, 할머니 모르게 가져 왔지 싶은데,
네것, 내것이 없이 한줌씩 입안에 털어 넣었고,
고구마를 캔 늦가을부터는 아주 큰 고구마를 들고 와서는 가방에 넣어 두었다가 집으로 돌아 오는
길을 걸으면서 입 크게 벌려서 한 입씩 베어 물었지요.

먹는 것과 일도 다 나누면서 하는 동네에서 일곱집이 한 집처럼 지냈습니다.
저가 지금도 엔간하면 잘 나누고 삽니다.
저는 사람들이 여러가지를 나누고 살지만 그 중 꽃을 나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이다 싶습니다.
보내는 사람도, 받은 사람도, 그 식물을 피워서 꽃을 보기 때문입니다.
꽃을 보는 맘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맘이 또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