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공원의 만추
미장원이 제법 멀리 이사를 갔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려서 환승을 해서 가야 합니다.
이 미장원 원장과는 우리가 다니던 미장원에서 미용사로 일 하던 30대 후반에 만나서 우리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개업을 해 나온, 10여년 쯤 되었습니다.
좀 멀기는 해도 이사를 가고 어제가 3번째 머리를 하러 갔었습니다.
준서할미처럼 멀어도 찾아 오는 사람들이 있다면서 아저씨들은 차를 몰고 다니니 더 많이 찾아 오신다 했습니다.
준서할미가 동네 미장원 거기서 거기이니 세미나를 다니라고, 우리 동네에서 처음 개업을 했을 때도 그랬고,
이번에도 세미나를 다니라 했습니다.
머리 만지는 것을 근 20년 한 사람이 기술이야 이젠 베테랑이지만, 유행 하는 감각을 익혀 오라고 한 말입니다.
여자들이 머리를 한 사람에게 10여년 동네 옮겨 다니면서 맡기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늘 가면 미장원 원장도 오랜 단골이라 성의를 다 하지 않게 되고, 또 늘 다니는 사람은 성의가 없다 싶고,
그래서 동네 주변으로 새 미장원이 생기면 찾아 가게 되는 오랜 단골로 남는다는 것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내 솜씨가 남다르게 있다면 새로 생긴 미장원으로 몇몇 사람이 왔다 가고 정말 잘 만지면 손님을
데리고 오고 그렇게 되니 세미나를 다니라 한 것입니다.
다니고 있다고 하더니 어제는 오늘은 더 이쁘게 해 달라 했더니 서울 가십니까? 아니고, 내가 요즘 돌아 다니는 곳이 많아서라고
했더니 세미나를 다니는지 머리 컷드 솜씨가 더 늘었는 듯 했습니다.
준서할미가 그 원장 아들 둘의 반듯함을 서너번 쯤이야기 했었습니다.
큰 아들은 군대에 있을 때도 관심 사병 하나를 맡아 있었고, 그 군인 월급 얼마 된다고 모아서 휴가 올 때 가지고 나오고,
집에 와서 친구들과 만나서 밥 한끼 정도 사고, 갈 때 그 적은 돈에서 남은 돈은 동생을 주고 갔었고,
제대하고 나오면 몸이 변할 것인데, 옷 살 필요가 없다고 가기 전 입었던 츄리닝 한벌로 집에서 평상복으로 입고,
나갈 때는 가격 산 재래시장 제품으로, 청바지 하나 사 두고 제대할 때까지 입었다 하니,
아들을 가진 친구들이,
월급을 그렇게 모으면 사병들에게 왕따 당한다 하던데라 해서 물어 보았더니 뭣을 도와 주면 사병들이 먹을 것 주는 것도
군것질 좋아 하지 않으니 남고 모아 두었다 한번씩 내무반에서 한꺼번에 먹는다고 하더라 했습니다.
꽃 피는 계절과 그늘이 아쉬운 여름철에
이 동네 주변 공원으로 소풍을 와서 먹을 것 얹어 놓고,
앉아서 놀던 시설물 이었을 겁니다.
탁자 위에도 낙엽이, 주변으로 낙엽이 수북수북 합니다.
가는 가을의 모습입니다.
둘째 아들도 훈련소에서 사격도 일등하고, 느리고 꿈뜬 같은 내무반을 쓰는 훈련병에게 도와 준다고 하더니,
훈련을 마치고 배치 할 때는 인사실에서 일할거냐? 해서
저가 사회에서도 늘 컴퓨터 하고 지내는데, 그냥 사회에서 하지 않는 몸으로 부닥치는 일을 하겠다 했다 했습니다.
작은 아들이 제대를 하고, 가수가 되고 싶다면서 나에게 3년간만 내 인생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지내게 해 달라 했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음악 학원 다니고, 전자오르간도 사고 하면서 집에 돈 하나 가지고 가지 않고, 자기가 벌어서 지냈다 했습니다.
3년차인 올 해는 서울로 갔고, 방 보증금만 집에서 내어 주고, 따라가서 방은 엄마가 얻어 주었다 했습니다.
어제 작은 아들 안부를 물었더니, 아르바이트는 샤브샤브하는 큰 식당에서 하는데, 여기서도 아르바이트를 해 왔으니,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일 하고, 잠시 시간이 나면, 핸드폰으로 잠시 잠시 다른 아르바이트 생은 오락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것도 하지 않고, 담배도 피지 않고 하니, 주인도 너무 좋아 하고, 주방의 이모들도 좋아 한다고 엄마가 참 잘 키웠다고들 한다고,
일은 일주일에 5일만 하고 주말에 하루 음악 학원에 나간다면서 일 하는 날은 식당에서 저녁까지 먹는다고 먹는 것은 걱정 말라고 한다 했습니다.
누가 보온병을 하나 주면서 따뜻한 물 담아 놓고 먹으라 하더라면서 차도 주던데, 엄마가 차 할 거리 좀 보내 달라고 했다 합니다.
반찬도 집에서 챙겨 보내는 것은 아니고, 주말에 음악 학원 나가는 날은 사 먹고, 하루만 집에서 밥을 먹는데 아들이 해
먹는다 합니다.
하도 그 청년들이 고등학생 때부터 퇴근 할 무렵이면 두 아들 중 고등학교 3학년이 아닌, 한 아들이 와서 문 닫아 주고,
같이 집으로 갔고, 가면 밥도 해 놓는다 엄마와 함께 먹는다 해서 그 때부터 미장원에 가면 그 아이들 안부를 물어 왔습니다.
묻지 않으면 우리 아들이요..... 하면서 미장원 손님에게 이야기 못할 것이고요.
그 청년들이 어떻게 이 복잡하고, 경우도 없고, 갑질은 기본인 사회에서 어떻게 자리 잡아 가나?가 큰 관심사 입니다.
그 아이들 엄마인 미장원 원장은 늘 바뻤고, 어려서부터 저녁 밥을 전기 밥솥에 있는 밥으로 즈그들이 아쉬운대로 찾아 먹고 자랐고,
굳이 훈육이라고, 어떻게 키울 것인가?를 관심사항으로 두고 키운 자식들이 아닙니다.
그 엄마는 여리고 고운 사람입니다. 말수도 많지 않습니다.
훈육이라는 것은 따로 없었을 것이고 엄마가 너무 본심으로 살고, 엄마가 고생하면서 사는 것을 보고, 그런 중에 엄마의 사랑으로
자라면서 그냥 그렇게 잘 커 온 것입니다.
자립심 강하게 잘 자란 청년들입니다.
참 이러야 해야 한다. 어릴 때 너무 집에서 야단을 치면 밖에 나가서 기 죽는다고, 때로는 아기들이 폭군이
되어도 또 그런 아기들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는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데 집에 와서는 동생을 너무 심하다
할 정도로 밀쳐 버리고 뭐든 손에 잡기만 하면 뺏어 버리고 때로는 엄마가 제어가 않되게 대들어도,
어린이 집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라 그 스트레스 받아 주어야 한다고들도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어디 있다가 이렇게 도시 공원으로 적당하게 깨고 가공해서
옮겨 왔는지는 몰라도,자연석입니다. 이 자리에 있은 것만 해도 수년이 지났을 것인데,
이끼 하나 없이 어제 가져다 놓았는 듯 합니다.
잔듸에도 단풍이 들었고,
돌 속에는 또 다른 돌이 박힌 그래서 세월의 느껴 보게 하는
멋진 만추의 풍경입니다.
아침 8시 30분에 컴퓨터 수업을 나가서 미장원에서 머리 펌도 하고, 허리 치료를 하고 오면서 재래시장에서 무겁도록
양팔에 들고 오는 먹거리 재료도 사고 그런 하루 였습니다.
미장원에 허리 치료 하러 가면서 도심 공원 쪽에서 내려서 이 풍경들을 구경 할려고 버스 네 정류장을 걸어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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