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기준에 모자라는 며느리들......

이쁜준서 2008. 2. 29. 21:40

옛날 우리들이 어린아이적 때나 우리들이 새댁인 시절의 며느리들일 때와 비교하면,

세월이 변한 것 보다 더 변한 것은 요즈음의 며느리들이다.

며느리야 없지만 내 딸이 남의 집 며느리이다.

 

TV에서 묘사되는 며느리들은 가관인데, 과장이야 되었지만,그들의 모습이 허무맹랑한것만은 아니다.

요즘 며느리들은 맞벌이를 한다.

그러니 어른들이 원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자식 낳는 것을 정말 가족계획이란 것을 해서 아기를 낳는다.

그런데 남편과도 의논하지 않고, 며느리들의 자기 개인의 입장등등에 맞추어 가족계획을 하다 보니

시어른들과, 또는 남편과 갈등이 생긴다.

 

직장생활도 남자들과 겨루어 똑 같이 자기 발전을 하면서 해야하기에 한 아이를 낳고 기루면서

둘째를 낳아 기른다는게 어려워 외동아들이라도 딸하나만 낳고 그만인 집도 많다.

형제 없이 도시의 아파트에서 갇혀 지내는 생활인데, 그 자라는 아기들을 두고 교육을 담당하는

나라에서는 인성교육이란 말들을 한다.

어떻게 인성교육을 시킬것인지 답도 없는 말을 날린다.

우리 준서만해도 혼자 자라는 아이인점이 제일 맘에 걸리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딸들을 키운 어머니들이 며느리로, 엄마로 살기엔 많이 모자라게 키웠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는 그래도 집안에서 내가 한 몫하는 일이 있었다.

일단은 소풀뜯기, 소풀멕이기, 여름이면 소풀을 멕이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엄마가 해 준

저녁을 먹고나면 설겆이는 초등고학년만 되어도 당연이 우리들의 차지였다.

혹여 집안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적게 모셔도, 1년상은 내었고, 아니면 3년상을 내었다.

그러면 아침, 저녁으로 밥상을 모셔놓은 방으로 드리는데, 저녁상을 들고가거나 저녁상을 물리는

것은 우리들이 할 때가 많았다.

상을 물리고 담배도 당겨 놓고, 그러고는 다시 촛불을 끄러 들어가고 그렇게 했다.

동생이 있다면 그 아기들을 업고 소풀도 뜯고, 소풀멕이러도 업고 가는 일도 담당이었다.

 

중학생이 되었을 때는 우선 우리 하얀교복에 갈분을 먹여 숫을 넣은 다리미로 다려서 카라를

빳빳이 해서 입었고, 그 한개뿐인 춘주복이나 하복을 우리 손으로 다 빨고, 다리고 그랬었다.

그 뿐이겠는가?

고구마, 감자도 삶아 먹었고, 초등 때부터 했던 설겆이는 이젠 영 담당이었고, 샘이 집안에

없으면 드무에 물도 길어다 가득 채워야 했었다.

업어서 보기만 했던 동생들은 이젠 씻기고, 밥 먹이는 일까지 우리들 차지였다.

 

시골에서는 고등학생이 귀했지만, 도회지에서 고등학생이 된 학생들도  자기 교복을 빨 때엔

집안의 빨래도 빨았다.

물도 귀한 시절이어서 일단은 통에 물을 담고, 빨래비누로 그 작은  물에 빨래판을 넣고 비벼서

빨고는 행구는 일은 시골이라면 냇가나 못에가서 헹구어 왔고, 도시라면 통에 물을 갈아가면서

헹구어 손으로 짤수 있는데까지 짜서는 바지랑대로 받힌 빨래줄에 널어서 말리는 식구들 모두의

빨래도 담당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집안 일을 했기에, 어른들을 모시는것은 자연스레 배웠고, 남의 집 며느리가

되어도, 집안 일도, 자식 기르는 일도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준서에미 세대만 해도, 고등학생일 때부터 야간 자율학습이란 것을 했기에, 한달에

두번 노는 일요일이래도 공부하기가 학교가 낫다 싶으면 학교로 가 공부를 했다.

아니면 독서실이란 곳을 다니는 아이들도 많았다.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도시락을 두개 사 학교에 가면 밤 12시가 넘어서 왔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집안 일을 해야하고, 자식을 낳고 기르는 것에 적응하기가 쉽겠는가?

주는 밥 먹고, 도시락 사주면 들고가고, 벗어 놓으면 빨아주고, 어째 쉬는 공휴일이면,

힘들었다고 맛있는 음식 해주는 것 먹으면 되었다.

 

그런데 내가 제목을 "기준에 모자라는 며느리들....." 이라 했지만 사실 남자들과 똑 같이 직장

생활에 책임이 있는 -생활 패턴이 달라진 요즘 며느리들에겐 기준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니 준서 같은 세대의 아기들이 다행스레 조부모가 키우는 일을 도와주지 못하면

인성이란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 되는 것이다. 

 

친구 딸의 시어머니는 외 며느리가 낳은 손녀 딸 하나 있는데, 나는 못 거두어 준다.

자식을 더 두는 것은 너희들 선택이지만 며늘 너도 너 인생이 있는데, 뭣하러 자식 더 낳아

메이고, 책임 배가 되는 생활을 하겠는가? 라 하더라 한다.

명예퇴직을 하기까지는 직장생활을 하셨던 분이셨다.

 

이젠 우리 할머니 세대도 낳아라 기루어 주마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우선 하나는 모르겠지만 두 아기를 키워주기엔 체력이 모자라고, 여기 저기가 아픈곳이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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