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서에미가 초등 5~6학년 일 때 쯤에 나팔 꽃으로 병풍을 만들었었다.
정 남향 집어서 요즘 준서가 불 끄고 누워서 달도 볼 수 있고, 겨울이면 햇빛이 실내 깊숙이
들어오는 것 처럼 그 집도 아이들을 데리고 불 끄고 방 안으로 비취지는 달 빛은 너무도 좋았다.
여름이면 마당에 자리를 깔고 저녁을 먹었고, 모기향을 몇 군데 피우고, TV도 툇마루에 내어
놓고, 선풍기도 마당에 내어 놓고, 누워서 정말 초롱초롱한 별이 보이고, 선풍기가 있어도
누워 있는 아이들을 부채질하다보면 잠이든다.
잘려고 방으로 들어 갈 때엔,아기 때는 내가 데리고 들어 갔고, 커서는 준서외할아버지가
안고 들어간 정말 그 집에는 우리의 청춘과 내 아이들의 유년이 고스란이 있는 집이다.
물이 밤 늦게서야 나와서 잠을 설치기가 일수여서 준서외할아버지가 아주 긴 물탱크를 손수
만들었었다.
나오던 안나오던 밤 새 받아도 넘칠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한 2년이나 그 용도로 썼나 그러다 물은 낮에도 나오게 되었고, 준서에미가 초등2학년 때는
여름이면 풀장이 되었다.
여를방학에는 안산에 있는 조카들도 2명이 보태어지고, 생질, 생질녀들도 와 있을 때도 있고,
아이들이 그 물탱크에서 풀장처럼 잘 놀았다.(츄브도 타고 놀 수 있었는 크기)
낮 시간대엔 자격 없는 선생님의 복식 수업이 있고, 때론 아이들을 몰고 수영장으로 가기도
하지만 해 질 무렵 종일 달아 오른 마당에 물을 뿌리고, 아이들은 수영복을 입은채로,
어느 아이는 호스를 잡고, 어느 아이들은 대야로 프라스틱 바가지로 물을 서로간 끼얹으면서,
마당이 온통 물이 질퍽거리고, 고함소리등 참 즐거운 추억이다.
여름방학이 들어 있는 그 달 수도요금이 두 달 뒤에 나오면 깜짝 놀랄 정도이기도 했다.
그 때 그 시절 앞 집 뒷담에 못질을 해서 땅에서부터 줄을 메고, 나팔꽃을 올렸다.
처음 얼마간은 아침이면 활짝 피는 색색의 나팔꽃이 얼마나 이쁘던지.
그랬는데 날이 한 참 가고 나니 잎도 마르고, 꽃의 크기도 작아지고, 좀 깨끗한 모습을
보기 위해 자꾸 말라진 잎도 따야하고 해서 종내는 걷어 내기도 했다.
담장 벽이 안 보일정도로 잎 끝이 뾰족한 잎으로도 이쁜 모양인 나팔꽃 녹색의 잎파리들이
벽을 덮었고, 아침이면 매일 새 꽃이 피어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돌돌 말렸던 꽃이 피어 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 4~5미터의 나팔꽃 병풍은 장관이었다.
마당 긴 집에 국화를 많이 키웠지만,안 쪽 화단에 저녁이면 피어 나는 분꽃도 그 진한 꽃분홍의
색과 서너 포기를 이어서 심어 놓으면 두 팔을 벌려서는 다 안지도 못하던 그 풍족함도
생각난다.
그 시절에는 요즘처럼 다양한 꽃들도 팔지 않았고, 꽃을 사서 심기 보다는 서로간 나누어 주고,
꺾꽂이로, 씨로 그렇게 우리의 추억어린 꽃들을 기루었다.
봉숭아꽃, 채송화꽃, 맨드라미꽃,국화, 유동화, 석류나무,분꽃, 수국, 아주 진빨강의
아마릴리스등,명사십리에 있다는 그 가시많은 해당화, 줄장미와 신품종의 장미들등이.
제일 처음 내가 국화를 기룰 때는 한 가지 뚝 꺾어 오지 못하는 품종은 잎을 따 와서 모래에
묻어 정성을 들이면 잎에서도 뿌리가 나고 아주 작은 가지가 났었다.
풍족스럽지 못하면서도 풍족스런 그런 세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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