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시골 생활

이쁜준서 2007. 3. 10. 02:03

내 고향은 내가 결혼해서 아버지와 조상님들 산소에 인사 드리러 간다고 찾았을 때도 전기가 없었다.

새신랑이 왔다고, 고향을 지키시며, 산소를 돌보시는 숙부님댁에 갔을 때 촛불을 밝혀 주셨다.

평소엔 호롱불이었는데, 그래도 어릴적에는 낮시간은 소풀먹이고, 호롱불 밑에서 숙제도 했었고,

어른들은 바느질도 하셨는데 말이다.

내가 초등학교 4~6학년 3년을 살았던 곳인데, 아주 산골은 아니면서도 전기도 없는 시골이었다.

동해남부선이 집 앞으로다녀서,대처인 부산 형제들 집에 갔다 오면서 짐은 밖으로 던져버리면  집에

있던 사람들이 주워서 가져 오기도 한 곳이었다.

전화가 있어 연락한 것도 아니어서 가면서 오마고 이야기 한 날은 기차 오는 시간을 감으로 잡아

올라 오는 차마다 보다가 주워 오는 것이였다.

그리고 농사일에 참 내어가는 때나, 저녁 보리쌀 삶아 밥 짓고, 소죽 쑤고, 그 모든 것은 기차 가는 것을

표준 삼아 했었다.

또 소 먹이다 길게 가는 기차를 보면서 어디론지 멀리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도 초등학교 어린시절에

하기도 했었다.

그 모든 것을 지금 생각해보년 얼마나 운치 있고, 재미난 일인지 모른다.

 

여름에 콩 밭을 메고 안어른들이 오면서 따온 물참외(오이) 하나를 갓 길어 온 샘물에 냉국을 말면

그 오이향이 어찌나 좋았든지 제법 씨가 딱딱한 오이속을 얻어 먹는 것보다 더 좋았다.

콩잎 냄새가 솔솔 나는 콩밭 열무로 담군 물김치, 콩잎을 보리쌀 뜨물에 삭힌 (콤콤한 냄새가 나는) 콩잎김치, 큰일 때나 명절 때 가마솥 뚜겅을 엎어 놓고 전을 지지지만 평소엔 전을 할 수 없기에  전구지(부추)를

밀가루와 섞어서 보리쌀 삶는 솥뚜겅에 붙여서 익혀 먹었다.

직접 기룬 밀로 밀가루를 빻아 온 것은 붉으레했다. 그래도 구수했다.

여름에 소풀먹이고 돌아오는 길에는 칼국수나 수제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오는데 그런 음식이

그날 저녁식사면 어찌 그리도 좋았던지.

한 그릇정도 남은 것을 장독에 얹어 놓았다 모깃불을 피우고 놀다가 먹는 재미는 요즘 사람들은 모를 것이고.

 

공해 없고, 인심 후했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 시절의 어른들은 이미 다 가셨고, 나도 할머니란 칭호로 불리우고, 그립다 그립다.

2년전에 가신 엄마가 이 시간 많이도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