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형제분들께서는 콧날이 반듯하고 오똑 하시고, 얼굴이
다들 작으셨습니다.
할아버님께서는 키도
작으마 하셨고, 울산지방의 선비이셨다 합니다.
할머니께서는 경작할
토지가 변변한 것도
아닌데 몰라라 하시고
서 어쩌다 찾아오시는 선비들을 반겨 맞아
주무시고들 가셨고.
그 당시 시골에 변변한
반찬도 없었지만
할머니께서는 그냥 있는대로 잡수시고 손님이 오셨다고 반찬을 더 하시지도 않으셨다 합니다.
집성촌이고 그 마을에
작은댁으로 사시는 6촌 형수는 반찬을 그나마 하셨다 합니다.
그러니 밥솥에 뚝배기 얹어 찐 된장 하나만 놓을 수 없으니 할아버님께서는 6촌 형수댁에 반찬을 얻으러 오셨고 반찬을 성의껏 담아 드렸다고 그 할머니께서 초등4학년 때에 아버지 고향으로 갔을 때
직접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너그 할매는 키도 크고
목소리도 커서 우리들이 빈양철이라 했었다고.
6남매 아버지 형제들 중에서 너그 아버지만
엄마를 닮아 키가 그 중에서 큰 편이었다고
하셨지요.
5남매중 고명딸인
고모님은 딸이라도 글을 할아버지께서 가르쳐서 저가 초등학교 때
까지 한문으로 제문을 짓고.
시댁 일가에,
친정일가에 결혼식이
있으면 큰상 차리는 것 감독도 하시고,
저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고향을
떠나 온 뒤 우리가 살았던 집, 그러니
친정 곳으로 이사를 와 살으셨기에 결혼식이라면 사돈 대접 큰 상 차리고,
환갑 잔치상 차리고는
우리 고모님 지시대로 해야하는데 늦다 싶으면 모셔 오라는 심부름 가는 사람에게
별난이 고모 모시고 오라고 했다 합니다.
아시는 것도 많으시고
꼬장꼬장 잔소리도 하셨던 분이셨던가 봅니다.
저 결혼식 전날 고모님께서는 저가 시집 갈 도시를 칭하시면서
길거리에 돈이 굴러 다니더라 하셨습니다.
장사할 꺼리가 많더라는 말 씀이셨지 싶은데.
을산에 공단이 돌아가고 인구가 폭증하고
하는 때에 집에서 기른 농산물과 두두를 만들어 동해남부선 기차를 타고 가서,
역전거리에서 팔아서 울산에 아들 둘 공부
시킬 집도 사고 농토도
사고 하셨습니다.
연세 들어서 고모부님께서 돌아 가시고 혼자
살게 되니 큰 아들이 엄마 혼자 못 계신다고 도시 생활 접고
집으로 들어 와 온 동네 효자란 칭찬이 자자 했다 합니다.
마을회관에 일주일을나오지 않으니 우리 숙모가 찾아 갔더니 아무도 없어,
기다리니 생질이
퇴근하고 왔고 엄마는?
치매가 걸려서 요양병원로 보냈다고.
늘 마을 회관에 모여서 점심 먹고들 놀다가
저녁 때 각자 집으로
갔었으니 동네분들이 다 치매가 아니다 것은 다 아는데,
그렇게 똑똑 하신 분도
장성한 자식이 요양병원으로 모시면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세상입니다.
그 후 3년인가 지나서 서울의 숙모가 요양병원으로 갔더니 너무 야위었어도 그 때
까지도 정신 줄은 온전 하시더라 했습니다.
똑똑하면 뭐 합니까?
자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아들 딸 6남매자식이 있어도 소용 없었습니다.
오늘 날을 장마비 와서 전체가 흐리멍텅 하고, 습기는 끈적이고,
그런 날 시골에서 화목난로 잠시 피우면
실내는 뽀송뽀송 해 지고, 그 난로에 빵도 굽고, 아니면 감자를 굽던가 하고,
그것은 여유이다.
단지 그 여유로움은
남편과 둘이 살아도
아내가 그 공간에 훈훈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내일 서울에서 꼭 참석해야 하는 결혼식이 있어 준서네에 갔다가 딸과함께 갈 것이다.
등에 메는 배낭 1,
어깨에 걸치는 가방1
따로이 짐도 없다.
남편이 전에 없던 일인데 가방을 들어다 준다고 했다.(기차역
까지)
전 같으면 짐도 없다 하고 혼자 나설 것인데
오늘은 그 호의를 받기로 했다.
전처럼 반찬 여러가지 준비 해 놓지 않았어도
혼자 있어 괜한 허전함일 때의 간식거리도
준비 해 두었다.
노년의 하루 중 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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