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가을 시절 음식

이쁜준서 2019. 10. 28. 06:27


요즘 생물 칼치 가격대가 좀 떨어졌다.

도소매 시장 어물점에서 신물칼치 사가서 조림 해 자셔요라 귄했다.

평소 가격 대비보다 제법 도톰해서 2마리를 사 왔다.


예전 돌아보면 몇십년은 훌쩍 뛰는 그 시절은 중학생이였다.

울산 쪽의 농가였고, 고래 잡이로 바다로 출항하고, 잡아 돌아 오는 항구 장생포가 가까운 곳이였다.

기장의 대변항에서 잡힌 칼치는 기장칼치라는 이름으로 전국으로 팔렸고,김장채소 무가 굵어질 무렵

가을 바람의 애동호박이 더 달큰한 때 잡혔다.

나무로 만든 납작한 고기 상자는 전체가 막힌 것이 아니고, 듬성듬성 나무판자를 대어 놓았기에 생선에서

나온 물은 바로바로 빠졌다.


만선의 칼치 배가 많이도 들어 오는 때는 칼치는 ' 지자리 간' 이란 이름을 달고 소금간을 해서 전국으로

팔리고, 생칼치는 부산, 울산 주변으로 팔려 나갔다.

그 때 시골은 요즘같지 않아서 돈이 참으로 귀했다.

굵은 것은 마음도 내지 못했고, 자잘한 칼치 두 박스를 장날 나가면 사 왔다.

요즘처럼 냉장차로 운반 되지 않아도 새벽에 들어 온 칼치가 경매가 끝나고, 바로 싣고 울산 오일장으로 왔기에

만지면 칼치 몸은 단단하고 은빛 비늘은 날아 오를 듯 했다.

두 박스에서 작은 것으로 골라서 호박 잎으로 비늘을 벗겨내고 뼈채로 썰어서 무침회로 먹었다.

막걸리를 발효해서 먹는 부뚜막의 식초는 무가 들어가는 생채 무침회를 정말 맛나게 했다.

그 중 굵은 것 골랐다 해도 별로 굵을 것도 없는 것으로는 무를 넣거나 가을바람의 애동호박을 깔고

대파, 약오른 풋고추을 넣고 마당가에 걸린 백철 솥에 끓이고, 가마솥에 밥 한 솥하면,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저녁을 마당의 덥석에서 먹고, 농주가 있는 집에서 농주를 가져오면, 잔치 같았다.

남는 칼치로는 칼치가 길다보니 둥그스럽하게 말아서 온마리를  넣고 젓갈을 담았다.

칼치 젓갈은 멸치젓갈보다 맛이 얕아도 단듯한 맛이 있었다.

멸치젓갈에 섞어서 사용했다.


그 시절은 청양고추가 없었다.

토종고추란 것만 있었지 요즘처럼 굵고 덜 매운 고추도 없었던 때였다.

토종고추 약오른 것 숭덩숭덩 썰어 넣고 한 칼치조림은 알싸했지 요즘 청양고추처럼 톡 쏘는 매운 맛은 아니였다.

칼치 조림을 하면서, 청양고추 2개를 넣었더니  매운맛을 좋아 하지 않으니 한개만 넣을 것 싶었다.

그래도 가을 시절음식이라서 예전의 그 맛은 아니라도 맛은 있었다.

어렸던 그 시절에는 채소도 참 순박했다.

무도 요즘처럼 아주 큰 것이 아니고, 배추도 알배기배추로 되는 것은 심은 것의 반 정도,

나머지는 퍼드럭배추라고 시퍼렇고 알이 채 배이지 않았다.

알배기로는 양념 김치를 담았고, 퍼드럭 배추 중에서 골라서 양념김치를 하고,나머지는 절여서 소금물에 잘박하게 담아 놓았다.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마개를 해서 겨울날 내어서 살짝 행구어서 밥하는 가마솥 뚜겅위에 얹었다.

쌈으로 먹었다.

때로는 쏭쏭 썰어서 참기름, 깨소금 넣고 무쳐서 밥을 비벼 먹었다.

그 또한 지금은 없는 그 시절의 시절 음식이었다.


수확하는 양으로는 그간의 세월에 개량을 해서 크고 결실이 많이 되는 품종이 되었지만,

몇십년 전의 농사물들이 맛이 더 있었다.

그 몇십년전의 세월도 살았고, 나이가 들면서 지금 세월까지 살았다.

분명 편하고 잘 살고 있는데도 돌아 갈 수 없는 세월이 그립고, 그 때 음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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