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샘물

건어물과 어물을 사 오다.

이쁜준서 2017. 1. 8. 06:30


비교적 먹거리 사다 나르고 먹거리 장만하고 하는 것은 그래도 그 기본은 예전 그대로 하고 지낼려고 노력한다.

식재료를 사는데는 좀 깐깐하다. 다듬고 씻는 일에도 깐깐하다.

사람이 먹고 사는 것이, 사람이 살아 갈 에너지가 되고 건강하게 하는 것의 기본이다.

설명절에 앞서  셋째 주말 경에 - 설명절에 앞서 장을 보러 가자고 약속을 했는데, 오전 11시 50분경 이웃 친구가 전화를 해 왔다.

다음주는 춥다고  하고, 이런 저런 일로 둘이 맞추기 쉽지 않으니 오늘 갔다 오자고 했다.







아직 설 대목 장을 보기에는 일찍기는 했어도 어물전에는 생선을 포 뜨고 다듬고 해야 하니 다들 그러하니 기다리게 된다.

우리는 앞  사람  사는 생선 손질하기까지 기다렸고 딱 한 사람이라 별로 많이 기다리지 않았고,

우리  두 사람것 중 한 사람 것은 끝나 갈 무렵에 두 사람이 왔는데 그들은 제법 기다렸다.


동태포를 2마리 포를 뜨고, 칼치, 가자미 강구 항에서  말렸다는  것, 동태 강구 항에서 피득하게 말린 것, 생물 가자미, 조기,

싱싱한 고등어 1마리,

설 명절에 것, 두고 먹을 것은 냉동실, 우선 두면서 먹을 것은 김치 냉장고에- 반찬이 어중간 할 때는 생선 한 토막 구워서 상에

올리면 심심한 국이 있거나, 된장찌개를 얹고 김치만 얹어도 맛난 식사가 되기에 한번씩 나가면  두고 먹을 것을  넉넉하게 사 온다.

집에 오면 투명 비닐팩에 다시 나눠 담아서 신문지로 사고 다시 비닐에 넣어서 갈무리를 한다.

생선이 다 같은 생선이 아니고, 같은 동태라도 맛의 차이가 있다.

재래 도소매시장 내가 늘 가는 단골 가게는 동태, 조기가 맛나는 것을 가져다 판다.

단골이었다 수도군이나 서울로 이사를 가신 분들이 택배로 주문을 할 정도이라고 한다.

그것은 품질에 대한 신뢰, 가격에 대한 신뢰가 있어서 된 일일 것이다.

우리 뒤에 기다리는 손님은 우리를 보고, 식구가 많은갑다 하셔도 대답을 못 했다.

달랑 2식구가 그렇게  많이 사가나? 싶을까 보아서.





전기를 사용하는 가전이 많다보니 전기 사용량을 생각 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전기압력 밥솥은 사용하지 않고, 사용 할 때는 가스불에 물을 끓여서 붓는다.

그러니 밥을 했더라도 보온으로 두지 않으려고 하는데,  그러면 다시 전자렌지에 덥혀 먹어야 하고, 직화압력 솥에 하면

전자렌지에 덮여 먹게 된다.

전자렌지에 덮혀 먹는 것도 하고 싶지 않은 일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그래서 밥을 해서 아침에 먹고는  솥에 퍼 담아 놓았다가,낮에는 가스불 낮추어 놓고 직화불에 덮여 먹으려고 솥을 하나 사 왔다.

직화불에 얹는 솥은 코팅이 되지 않아야 하고, 그렇다고 무쇠솥은 조금만 손질에 게으럼을 부리면 녹이 쓸고( 퇴장해서 있고)

코팅이 되지 않았어도 녹도 쓸지 않는 다고 했고 예전 양은 솥처럼 얇지도 않고 해서 사 왔다.

간혹 콩나물 밥도 하고, 초여름 파란 햇 완두콩도 얹고 밥도 할 정도의 크기로 샀다.

식초를 넣고 물을 팔팔 끓이고 그 물에 탄산소다가루도 넣고 씻었다.

처음 사용하기 전에는 열을 주고 들기름을 발라서 솥 길들이기를 해서 사용 할 것이다.

무쇠 솥이 아니어서 바로 사용 해도 되지 싶어도 들기름 칠을 한번 할려고 하는 것이다.





예전 장날  아버지들은  소를 몰고 큰 가마솥을 사러 가셨다.

그렇게 사온 솥은  그야말로 소에 얹어 와야 할 만큼 무거웠고, 처음 사용하기 전에 길들이기가 거창스러워 보였다.

어느 집 가마솥을 새로 산 것은 이웃에 뉴스가 되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들고, 집에서 담은 농주를 내어 놓고,

바로 정지간(부엌)에 거는 것이 아니고 밖에 솥을 걸어 놓고 솥 길들이기를 해서는 정지간에 솥을 걸었다.

그 참견하는 음성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정겨움이었지 싶다.

사용하면서도 엄니들께서 들기름 칠을 가끔식 하시면서 사용하셔서 가마솥 뚜겅은 윤기가 반지르르하게 나는 검은색으로

유지가 되었다.

물론 솥 뚜겅만 들기름 칠을 하는 것이 아니고, 솥 안과 밖을 다 하셨다.


예전 우리들이 어린아이 시절에는 참으로 농촌에서 돈이 귀했다.

밭 농사 마늘, 콩, 잡곡, 김장채소등은 요즈음처럼 대대적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대대적으로 할 밭도 없었고,

콩이나 팥, 잡곡을  아껴 먹으면서, 얼마간 팔고, 담배농사, 누에치기, 벼 수매 한 것으로 몫돈이 나오고, 송아지를 사서 키워서

송아지를 낳고 그 송아지를 키우고 해서 몫돈이 될 정도였다.

푼돈을 만들어 쓰는 것중에는 장날 나무를 해서 소구르마나 지게에 지고 나가서 팔아서 용채로 썼다.


그래서 엄니들께서는 명절 장을 볼 때야 제법 큰 돈을 만져 볼 수 있어서 절약해서 생활도구를 샀었다.

냄비, 주전자등등을 그렇게 사쓰셨다.

그 시절은 냄비도 땜질해서 사용 했었다.

냄비 때우는 사람이 이 동네 저 동네를 돌면서 동네 어귀에 앉아서 상에 칠도 해 주고 그랬었다.

예전 그 때처럼 나는 설대목 장을 보면서 솥을 하나 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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