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가면서 우리 사회 환경에 따라 살아 가는 자세도, 자식을 키워 내는 것도 달라져 왔을 겁니다.
준서할미 세대가 자랄 때는 남녀의 구분은 예전의 양반, 상놈(그 시대에 그렇게 불렀으니 이리 부르겠습니다.)의 구분 처럼
참으로 엄격 했습니다.
갓난쟁이던 어찌 되었던 남자 아이가 누워서 자고 있으면 머리 맡으로 지나가면 큰일이 납니다.
바쁘니 발 아래로 지나가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어른들도 않계시니 아기 머리 위로 지나가다 할머니나 엄니께 들키면,
어디 여식아가(때로는 가시나가) 머리 위로 지나가노? 하면서 불호령이 떨어졌고,
준서할미는 외갓집에 가서 남자 외사촌들과 또 그 때 서너살이었나? 남자 외사촌 동생이 우리들 노는데 같이 있었는데,
덥석을 말아 둔것을 뛰어 넘는 놀이를 하다가 아기가 저와 부딪혀서 넘어져서 우니, 당장에 사랑에서 보고 계시던,
외할아버지 마당으로 내려 오셔서 가시나가 조심성 없게 알라를 넘어지게 했다시면서 단박에 뺨을 때리시기도 하셨습니다.
동네에서 하루 일기를 보시는 분으로 알려지신 분이시고, 일제 강점기 시대에는 만주로 가족을 솔가해서 가셨다.
자리를 잡지 못하시고, 다시 한국으로 나오셔서 추스리시고는 다시 가족을 솔가 해서 일본으로 가셔서 해방과 함께
고향으로 나오신 분이셨지요.
그분의 살아 오신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글은 읽지 않으셨지 싶어도 자식들 훈육에는 정직성을 많이 강조하셔서
엄니 형제분들도 엄니 형제분들의 자식 세대들도 엄니 형제분들이 5남내이신데도 자식들이 다 정직한 사람으로 자라기는 했습니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타협하지 않는 정직이 참으로 불편할 때도 있으나, 그 시기는 넘어 가는 것이고,
언제나 어느 누구에게나 어느 자리에서나 당당할 수 있습니다.
준서할미는 친정 조부님께서는 준서할미를 낳고, 이름을 지어 주시고, 한번 안아 주시고, 첫 돐 전에 돌아 가신 분이신데,
친정 할아버님께서는 선비로 불리우시는 글을 읽으신 분이시니 남녀 차별은 하지 않으셨는지,
하나 있는 따님이신 우리 고모님께도 글을 가르치셔서, 고모님 시댁 문중에서나 친정 문중에서 삼년상을 낼 때 제를 지낼 때는
제문을 지어셨고, 천정에 돌가리포대 종이로 봉지를 만들어 그 내용을 적으신 붓글씨를 보면 참으로 잘 쓰신 글씨여서 다시 쳐다 보게 되었었지요.
다 준서할미 초등학교 시절의 어린날의 기억 입니다.
준서는 참 착합니다. 에미에게도 말로도 달려 들지 않고,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에게도 참 공손 합니다.
각설하고,
그런 그런 여자와 남자는 하늘과 땅처럼 격차를 두시는 어른들 밑에서 자란 준서할미 세대들도,
다 한 것은 아니지만, 도시로 나가서 공부도 했고, 우리가 자라서 결혼을 해서 우리 자식을 키울 때는 남녀 차별을 두지 않고 키웠습니다.
우리 아이들, 주위의 조카들이 3~4살 정도일 때는 한 서너번을 엉덩이를 아프게 때리면 다음에는 때리지 않아도 너 맞을래? 하면
그 때 아프던 기억이 있어서 요즘 아기들처럼 통 무시를 하지 못한다 생각 했었습니다.
그런데 준서를 키우면서 에미는 수도권에 있고, 우리는 지방에 살고 있으니 즈그 에미를 3~4주에 한번씩만 보니 그랬는지?
준서할미 자신이 변했는지?는 몰라도, 주방에서 뜨거운 냄비들을 내려 놓았는데 준서가 들어 오면,
가스불에 얹어 놓은 것을 불을 끄고, 준서와 함께 거실에 나와서 놀아 주다가 할머니 다시 일을 해야 하는데 가도 되냐? 고
물으면 준서가 가스 불을 끄던 것을 보았으니 가라고 대답을 해 주고 그 때서야 들어 갔지,
준서에게 위험하다고 나가라는 말도 한번 하지 않고, 삶는 빨래 비누칠을 한다고 욕실에서 앉아서 하면,
겨울이라도 준서는 대야에 뜨신 물 받아 주고 손수건등이나 작은 빨래감을 넣고, 저도 할머니 따라서 하고 앉아 있으면,
대야의 물이 식으면 따뜻한 물을 보충해 주면서, 데리고 놀았으니 천기저귀 했던 준서빨래가 많아서 삶는 빨래는 매일 해야 했었고,
겨울이라도 우리 욕실 바닥은 늘 축축 했었습니다.
스텐 빨래 삶는 통에는 중앙에 봉이 있고, 가 쪽으로 빨래감을 넣어서 삶는데, 삶을 때 소리도 나고 부글부글 끓는 모습을
준서가 보고 싶어 해서 안고 서서 보여 주었습니다.
비가 오면 빗줄기가 강하지 않으면 우산을 받고서 안고서 옥상으로 올라가 비 구경을 했습니다.
식물들이 많으니 비가 식물에 떨어지는 모습도, 빗물이 우수관 쪽으로 흘러 가는 것도, 옥상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비가 많이 오면 포대기로 업고서 올라가서 보았습니다.
다른 분의 블로그에 홍수가 진 다음 계곡물이 소리 내면서 흘러 내리는 모습을 물 보자면서 보고 또 보자고 해서
정말로 큰비로 10차로 도로에도 물이 흘러 가는 때도 몇번을 십차로 도로를 건너서 이웃의 대학교로 가서,
우수관으로 콸콸 쏟아 지는 비도 보았고, 큰 나무 작은 나무들에 폭우의 비가 쏟아 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다른 아기들도 다 그렇게 행동하는 것들도, 준서할미에게는 우리 준서만 그렇게 행동하고 느끼는 듯 해서 늘 감탄스러웠습니다.
준서가 두 돐이 지나고 몇개월 지나간 다음 어느 날 하는 말이 내가 잘하면 우리 할머니가 좋아 한다라는 말도 했습니다.
요즈음 아기들은 매를 들지도 않아야 하고,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리지 않아도, 저를 정말로 대접하는 것도 알고,
사랑 받고 자라고, 저를 대접한다 싶으면 착하게 잘 자랍니다.
분답스럽게 던지고, 장난감 와르르 와르르 붓고 하는 것은 자라나는 성장 과정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이웃의 세돐이 지난 승훈이는 즈그 할머니가 장난감 바구니 붓지 마라, 하나만 부어라 해 보았자 다 부어야 하니,
준서할미와 놀면서는 준서할미가 우리 놀고 담을께요 하면, 승훈이가 준서할미에게 눈을 맞추고 웃습니다.
무엇이든 승훈이 편이 되어서 승훈이 눈 높이에서 같이 놀아 주니 앞집할머니는 승훈이 할머니 친구이고, 승훈이 친구이라 합니다.
친구라고, 가면 먹는 것도 챙겨 줍니다. 늘 즈그 할머니나 즈그 에미가 하는 것을 보았기에 저도 대접을 하고 싶은 것이지요.
요즘 아기들을 키우면서는 절대로 때리면 않됩니다.
사랑의 매는 없습니다.
때리지 않고, 저를 이해 해 주고 저를 사랑한다 싶으면 어른 말을 잘 듣습니다.
말하자면 아기 말을 어른이 잘 들어주면, 아기들도 어른 말을 잘 듣게 됩니다.
때리면, 고함으로 야단을 치면, 하는 것 마다 분답다고 어지럽힌다고 야단을 치면, 아이의 심성이 강해 집니다.
강해진 심성에는 과격하게 행동하게 됩니다.
승훈이가 길 가다 횡단보도에 멈추어 서 있으면 괜히 준서할미 발등도 밟아 보고, 앉아서 잘 놀다가도 쿡 지어 박아 봅니다.
그러면 승훈이 할머니는 않돼라고 합니다.
준서할미는 그저 웃지요. 장난을 걸어 보고 싶은 남자 아이라서 그런 것이지요.
'샘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리한 다육이들 (0) | 2015.09.17 |
---|---|
인정 (0) | 2015.09.17 |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달렸고, 사람은 자연 속에 몸을 담고 산다. (0) | 2015.09.12 |
꽃아그배 나무의 열매 (0) | 2015.09.08 |
오늘은 하늘지킴이가 되어서 (0) | 2015.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