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 한가마 삶을 수 있는 큰 무쇠솥에
물 반 콩 반 그득히 채워 불을 지핍니다.
스무해 넘게 아궁이에 불 땐 이력으로 치자면
눈 감고도 수월히 해 낼 일인 듯 싶지만
은근한 불길로 눌지 않게 그 많은 콩을 익히기란
대여섯 시간 묵상하는 맘이 아니고서야
해 내지 못할 듯 싶습니다.
잘 익은 콩을 절구통에 넣고 찧어서
장갑 낀 손으로 두들겨 목침만하게 메주 만들면
늦가을 볕살이 아까워 얼른 볕바라기를 시킵니다.
볕살에 마르는 메주를 바라보는 내 그윽한 눈길이
커 가는 자식 바라보는 엄마들 눈 만큼이야 흐뭇하겠습니까만
점심 한 끼 쯤 먹지 않아도 배부를만큼은 됩니다.
익힌 것은 불이요 말리는 것은 볕이라
하늘에 태양이 있음에 새삼 고마운 마음
사나흘 볕바라기 시키고 나면
처마끝에 매달아 다음은 바람에 맡겨야지요
어디서 일어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바람한테
두어 달 잘 부탁을 해야겠지요^^
사나흘 볕살이 말린 것은 겉일 뿐
속까지 시원히 말리는 것은 그래도 바람일 터
고운 바람아, 맑은 바람아
천왕봉 높은 봉우리 가는 길에 이 골을 스쳐간다는데
벽소령 환한 달빛 머금은 밤바람은 아래로 불어
이 골을 내리타고 섬진강으로 간다는데
오가다 마주치면 처마끝에 매달린 우리 메주들
풍경처럼 흔들어 주고 가소
이렇듯 모두 자연에게 맡깁니다.
메주 가 볕과 바람을 받고 말라가는 저 정갈한 마당에는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된 곳입니다.
콩 한가마가 들어가는 가마 솥에 물반 콩반을 넣고 넘치지 않게 삶기란, 정말 묵상하는 맘으로 불을 때어야 할겁니다.
어릴적 시골에서 메주 삶는 가마솥에 불은 아이들에게 맡기지 않았지요.
지금 생각하니 눈물처럼 뚜겅 밑으로 콩 물이 넘치었지, 풀풀 그렇게 넘지 않았음이 생각납니다.
콩을 익힌 것은 불 이요 말리는 것은 볕 이고, 속까지 말리는 것은 바람 이라 하셨네요.
또 들꽃님의 정성 이지요.
그 일연의 과정을 어릴적부터 보아 왔던 저는 이 글은 기도하는 詩 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된장을 들꽃님은 - 달빛된장이라 부르십니다.
예전 어른들께서는 장은 한 해 농사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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