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 사이로 다닌다 하듯이 남편이 일 하는 열무김치거리 사러 간다고 하고 나갔다.
그 전날 오후에 갔더니 열무김치거리를 파는 곳이 없었다.
아마도 기후적으로 농사 지었던 것이 끝나고 새로 열무 씨앗을 넣은 것은 너무 더워서
한동안 열무 출하가 적은 모양이었다.
앞 전 담을 때는 열무 300원씩, 얼가리 3단에 990원 그렇게 6단을 담았는데,
어제 나가서 열무는 참 적당하게 참한 것으로 1단에 2,500원, 얼갈리 1,500원 4단을 사 와서 담았다.
돌아 오는 길에 빗방울이 떨어졌고, 집에 와서 열무를 씻을 때는 옥상에서 우산을 혼자서 바치고 씼었다.
4단을 개수대에서는 씻지 못하니 보통이라면 마당에서 씻어서 올리는데, 옥상으로 바꾸었다.
연한 것을 바로 절여야 해서 절여서는 우산으로 덮어 주었고,
여자들이 배추김치보다 열무김치는 좀 쉽게 담는다해도 잔 일들이 많아서,
남편 일하는데 심부름 하면서 그래도 오후 7시 이후에는 담았다.
친구는 열무가 비싸다고 배추 물 김치를 담는다고 2포기를 사더니 오늘 좀 주는데,
배추를 길이대로 한 장 한 장 떼어서 김치 국물에 국수를 말아도 좋을 정도로 삼삼하게 담았고,
점심 때 국수 먹을 때는 친구네 배추김치, 우리 열무김치, 다 적당하게 익어서 멸치 육수 내어서
더운데 국수가 밥 보다 잘 넘어 갔다.
예전 시골에서는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도 잔치에는 여러집에서 음식부조를 해서,
엔간하면 돼지수육도 있었고 물론 밥과 국, 전, 나물, 떡과 술, 감주, 묵까지 있었고,
손님접대를 하는 익힌 음식을 가방이라고 천막 아래 상 차려 내는 곳을 두어서 했고,
국과 밥을 하는 곳은 날씨가 더우면 마당에서, 늦 가을에는 정짓간에서 했다.
1950년대 부산에서는 시골처럼 누가 음식부조를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갖가지 음식을 할 경제적 여유도 없어서, 국수를 삶아서 갖가지 고명을 얹어서 대접했다.
총각이나 처녀에게 국수 언제 줄것인데?
그 뜻은 결혼을 언제 할건데란 물음이었다.
그래서 잔치국수란 말도 생겼지 싶고, 분식집 메뉴판에도 잔치국수라 적혀 있지 싶다.
누가 국수 두뭉치를 주었다.
인터넷으로 유명하다는 국수라 했는데 중면보다 약간 더 굵었다.
메밀국수와 흰색국수 두가지가 궁금해서 다 먹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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