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채》
안채를 다 카메라 한 화면에 잡을 수 없어 오른쪽, 왼쪽으로 두번 담았다.(오른쪽)
사랑채처럼 오른쪽에 작은 루각이 있었고, 더운철에 손님과 차 한잔으로 담소하는 장소로 이용하기도 하는 모양이었다.
명문가의 종택이어서 규모가 오밀조밀 하기도 하고 안채의 규모는 크기도 컸다.
바로 위 사진에서처럼 안채는 마루가 높지 않았다. 댓돌도 한개의 높이였고.
우리나라 종가의 종손들의 모임에서 탐방을 오는 날이여서 친척들이 모였고,
접대 준비를 시어머니대 며느리대 안사람들이 모여서 하고 있었다.
안채 왼쪽 모습
안채로 들어가는 사랑채 왼쪽 중문
이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을 닫아도 사랑채 옆으로 안채와 통하게 되어 있었다.
중문의 사전적 의미는 대문안에 또 다른 채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되어 있음
. 중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안채 사이에 내정(內庭)이 있고 내정 양쪽에 부속건물이 딸린다. 서측에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고방채가 있고, 그 뒤편에 내측(內厠) 이 있다. 마당 동측에는 4칸 규모의 동아래채가 있다. 안채 향원에 삼문(三門)을 짓고 그 안에 전퇴가 있는 3칸 규모의 사당을 두었다.
중문으로 들어서면 사랑채와 안채와 사이에 내정(內庭)이 있다.
내정 양쪽에 부속건물이 딸린다.
서측에는 고방채가 있고, 마당 동측에는 동아래채가 있다.
동아래채는 결혼을 하고 바로 살림을 내어 놓은 것이 아니고 이 아랫채에서 한동안 집안 가풍도 익히고
일정기간 살다 살림을 내어 놓았다 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아랫채이다.
동아래채 지붕과 사랑채 지붕선이 이어진다.
안채 굴뚝은 사랑채 굴뚝보다 높았다.
굴뚝 앞 쪽으로 사랑채 뒷쪽이고 지붕선이 날렵하다.
사당 뒤로는 대 숲이 있고,
사당의 문
사당 뒤의 대숲은 대가 싱싱하고 대가 굵은편이었다.
기둥을 받치고 있는 돌
정지문을 나무를 둥글게 깍고 그 곳에 정지문짝을 달았다.
정지문
정지문
우물
장독간
이 댁 종부께서는 간장, 된장을 담아 종가의 맛을 알리신다고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창 황산리 신씨 고가 (0) | 2011.06.29 |
---|---|
충신 동계 정온선생 고택을 찾아 1-3 (0) | 2011.06.29 |
친구따라 거창으로 (0) | 2011.06.27 |
충신 동계 정온선생 고택 방문 1-1 (0) | 2011.06.27 |
동해의 아름다운 해변( 이기대 앞 바다에서 죽성리 앞 바다까지의) (0) | 2011.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