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람이 서서 발을 맞추어 하면 능률이 배가 되는 탈곡기
완전 수동이고, 보리나, 벼를 탈곡할 때 사용했던 것임
나누는 기쁨 실천회 까페에서 담아 왔습니다.(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풋보리밭의 싱그러움이 저 청까그라기가 없다면 참으로 밋밋할 것이다.
보리를 수확할 때쯤 망종 가까이엔 보리가 온통 황금빛이 햇빛에 바랜 빛이고, 또 성냥개비 하나로 밭을 다 태울것 같은 마른 모습이 된다.
60년대, 70년대초엔 낫으로 보리를 베어 무단(사람이 한아름으로 안아야 할 정도으 큰단) 으로 묶어 지게로 집 마당이나, 타작마당으로 들인다.
그러면 저 위의 탈곡기에 두사람이 각기 한발로 밟으면서 옆에서 시중 드는 사람이 두손으로 꽉 쥐어 지는 분량만큼을 큰단에서 쥐어주고,
제일 능률이 오르는 모습은 4인 1조가 되어 탈곡을 하는 것이다.
완전 수동으로 사람의 협심으로 했던 탈곡기 였다.
그러자니 타작은 품앗이로 했다. 달 밝은 밤에도 했다.
보리를 수확 할 때는 비가 자주 올 때라 보리는 수분이 있으면 엿질금 낼 때처럼 싹이 잘 트고, 싹이 나면 그 보리는 곡식으로는 가치가 없어지니
보리타작은 게으름을 부리지 못했다.
보리를 벨 때도 저 까그라기가 부러저 땀이 난 얼굴, 팔, 다리등에 붙고, 탈곡을 할 때는 에엥~ 에엥~ 이나, 와로~ 와롱등등으로 들리는 기계가 힘차게 돌면
돌수록 까그라기는 더 많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무리 따갑고 콕콕 쑤셔도 참을수 밖에 없었던 -보리 까그라기- 였다.
그래서 까탈스런 사람을 보리까그라기라 하기도 한다.
우리 준서를 사랑했던 준서의 -옆집할머니- 인 내 친구는 준서를 보리까그라기라 부르기도 했었다.
그 옆집할머니가 강변에 일구어 채전밭을 하는 옆에 보리 농사가 지어져 있는 곳이 많다.
그 친구도 예전 농사를 지었던 경험이 있으니 보리를 보니 예전 생각이 났고, 보리까그라기 생각도 났고, 그러다보니 준서생각도 났다.
-보리까그라기 준서- 라며 어제는 준서 이야기를 했다.
6월 5일이 망종이었다.
芒種 (망종)은 보리를 베고 벼를 심는 시기 였었다.
요즘은 모판을 비닐로 덮어 일찍 만들고, 모내기도 일찍하니 망종 전에 모심기를 하지만, 보리는 그래도 망종쯤에 수확을 하고들 있다.
보리도 콤바인으로 수확하고, 알곡이 포대로 나오기도 한다는데, 다락논에 조금씩 심었는 것은 아마도 예전의 저 탈곡기로 할것 같다.
아무리 콤바인으로 수확과 탈곡이 함께 이루어 져도 보리까그라기는 몸에 붙을 것이다.
보리는 사람으로 치면 참 개성이 강한 사람이다.
우선 늦가울에 심어 추운 겨울을 보내어야하고, 그 추운 겨울동안 땅이 얼고, 녹고 반복하다보면 보리 뿌리와 흙이 다져지게 해동이 되면서 밟아 주어야하고,
보리까그라기가 청보리 일 때의 보리밭은 싱그러움의 대명사이고, 누렇게 익으면 그 또한 풍경으로서는 일품이지만,
보리까그라기란 단어까지 품고 있으니 말이다.
芒 (가시랭이 망) : 가시랭이(까그라기) 가 있는 씨앗이란 뜻이기도 하다.
준서의 까탈은 보리까그라기라 할 정도였다.
매사에 예민해서 두리뭉실은 없었고, 할미랑 있을 때는 그 까탈을 외할아버지와 할미가 다 받아 주었다.
준서 입장이 되어 보면 틀린 것이 없었기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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