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시장에서 큰 그릇점을 단골로 다닌지가 40년도 더 되었다.
그 집 말고 단골까지는 아니라도 자주 다니던 곳이 있었는데 그 시기에
곰 솥으로 쓰는 큰 찜통도 알미늄이었는데 그 무렵 질 좋은 스덴으로 큰 찜통이 유행하기 시작한 때였다.
스덴 찜통을 사려고 늘 가던 곳이 아닌 다른 곳 두집에서 가격을 알아 본다고 묻고, 가던 곳에 갔더니
영 더 비쌌다.
(비싼만큼) 깎을 수 있나고 물었더니 않된다고 딱 잘라서 말 했다.
그래서 앞 전 물었던 젊은 30대 남자가 주인인 곳에서 친구와 함께 찜통을 사고 있는데,
아기를 업고 그 상회 아내가 왔다.
더위로 얼굴은 벌겋게 달아 있었고, 장사의 때는 전혀 없는 그저 첫아기 업은 젊은 엄마일 뿐이였다.
그렇게 그 상회가 단골이 되었고, 우리 아이들과 친구들의 아이들, 친구의 친구 아이들 결혼식 때
혼수로 사 보내는 그릇과 상 등등을 그 집에서 샀다.
내가 그 때 한 말은 어디에 가도 가격으로 잘 샀다는 말을 듣게 헐하게 신용 있게 팔아라 했을 뿐이였다.
첫아이 결혼식 때 부조를 5만원을 했기에 결혼식이 끝나고 돌려 주었다.
내 친구들 결혼식 때 부조를 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받지 않는다고 그저 물건 값만 잘 주면 된다고 했다.
살림살이가 다 있다 싶어도 간간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아직도 사 오기도 하고,
서문시장을 가면 살 것이 없어도 들어가 차 한잔하고 오는데, 코로나 중인 때 갔을 때 도시락을 사 와
밥을 먹으면서 국수 한 그릇 시켜 주겠다고 해도 거절 했다.
한창 집수리를 하다가 다슬기를 부탁한 것을 잡아 왔다고 가지러 오라 하는데 내가 전화 대화를 하면서
말을 높이는 통화가 되었고, 그렇게 통화 하다가 오늘 언니가 말을 그렇게 하시니 다른 사람 같고 이상하다고 했다.
첫아기 업고 얼굴은 더워서 붉었고, 그 모습으로 처음 보았기에 어쩐지 그 사람은 막내 동생 같아서 말을 놓았던 사람이었다.
내가 젊어도 말을 놓는 사람은 너 뿐인데,
너무 힘이 들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화 통화에는 말을 높이기에 너에게도 그렇게 되었다.
미안하다 했다.
40여년 지기들 중에 나이차가 3살 적은 사람이 둘이 있고, 그 보다 더 많이 나이차가 난다.
3살 적은 사람들이 누구 엄마라고 부르다가 이젠 준서할머니라 불러 왔다.
코로나로 올 해 딱 한번 모임을 했을 뿐인데 전화 통화시에 " 형님" 이라고 불렀다.
생경 했다.
이 도시에서 친구가 된 사람들은 이 동네에서 같이 10년을 살다가 이사를 간 나보다 두살 위 한 사람 말고는
다들 나이차가 있는 사람이다.
두살 위 형님이 나이차가 두살인데 깎듯이 형님이라 부르고 사람 대접을 한다고 고맙다고 했다.
아직도 이웃 친구와 셋이서 일년에 서너번을 만나고 올 해도 이웃 친구네 집에서 같이 만나 저녁밥도 먹었다.
내가 대접하는 것은 내가 하는 것이니 그리 하는 것이고,
누가 나를 대접하는 것은 실상은 상대를 대접하는 것 같지만, 자기의 얼굴인 것이다.
누가 나를 대접하는 것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부산에서는 나이 차가 있으면 형님이라 부르지 않고 언니라 불렀다.
이 도시에 오니 ' 형님'이라 불러서 여자들끼리 부르는 칭호가 이상하다 했지만,
그 칭호에 익숙해 졌다.
어쩌면 언니라 하기보다는 형님이라 부르면 서로간에 예의를 차리게 되지 싶기도 했다.
언니라 부르다가도 ' 니'가 되기도 했던 것 같은데,
'형님' 이라 부르다가 ' 니' 라 하지는 않더라 싶다.
거실 가구 구조를 바꾸고 나니 난방하는 곳에 둘 화분들을 들일 수가 없었다.
1인용 쇼파를 다른 곳에 옮겨 놓고, 남쪽 창가에 러브 하와이 한 화분만 놓았다.
정말로 섭섭해 지는 오래 된 화분도 정리 했다.
남쪽 창가로 난방하지 않은 방에 들였던 화분들도 도배를 하고 안마 의자를 옮기고 행거도 그방으로 옮기고
화장대도 놓고, 책장도 하나 놓고 하니 지금 상태로 그래도 공간이 보기 좋게 있게 되었다.
다른 방으로 화분대 하나 놓고, 카라등의 겨울동안 물을 주지 않을 작고 큰 구근들만 넣었다.
어느 해 자스민, 부겐베리아, 목베니아가 키가 컸는데 들이지 않는 것으로 정리 한 적이 있다.
그 많은 다육이들은 해마다 줄이고 줄이고 하다가 연봉이란 다육이 10년도 더 키운 모양새도 잘 잡힌 것이 있었다.
남편은 들이지 않겠다 해서 무엇이고 꽃에는 1순위가 이웃 친구이고, 또 다른 꽃을 많이 키우는 친구가 2순위인데,
이웃 친구에게 가져 가라고 했더니,
일 하는 것을 알고 밤과 고구마를 찌고 커피를 보온병에 담고 종이컵까지 챙겨서 왔다.
이렇게 오래 키워서 컴퓨터 책상에 놓으면 될 것을 왜 남을 주느냐고 했고,
조금 떨어진 곳에 화분들 정리를 돕던 남편에게로 시선을 돌렸더니 고개로 않하겠다고 했다.
친구 하는 말이 아저씨 다 버릴려고 하시니 아줌마도 버리겠다 할지도 모르니 잘 해야 겠다 했다.
이웃 친구에게 한번은 물었다.
왜 언니도 아니고, 형님도 아니고 아줌마라 하느냐 하니,
나는 한번도 남을 언니라고도, 형님이라고도 한 적이 없어서 그렇게 부를 수가 없더라 했다.
나는 둘이서는 해라로 해도 전화 통화시에나 밖에서 남들 앞에서는 해요로 한다.
아픈 맘으로 보낸 문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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