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부부는 결혼한지 5년차에 아기를 낳았다.
맘대로 걱정도 못하고, 은근슬쩍 병원에 가 보라고 딸에게 이야기 하면 생기면 낳는다고,
병원까지 가지 않는다고 했다.
나이는 있고 걱정이 되었다.
그러더니 우연하게 아기가 들어 섰고, 자연분만의 순산까지 했다.
어제는 사돈과 나와 즈그 부부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시쳇말로 티타임)
정신 없이 아기에게 빠지게 되더라 했다
어느 순간 우리 부부가 근본으로 살아 오다 아기을 얻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했다.
그렇다면 아기 낳기 전의 근본에서 벗어 나면 않되겠다 싶더라 했다.
아기로 인해서 아내가 눈물 흘리게 몰아 부치지 않아야 겠다.
아내가 도와 달라 할 때 도와 주면 되는 것으로 아기 키우는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의견을 우선으로
두기로 했다 했다.
양가의 부모님께도 아기 태어 나기 전처럼에서 변하지 않아야 겠다.
아기 엄마는 우유 양을 늘리고 3시간마다 먹이던 것을 4시간으로 해 볼 것이라 했다.
육아책의 생후 한달이 지나고부터 할 수 있다고.
모유를 먹고 난 다음에는 먹던 우유를 딱 그 정도로 남기는 것을 보면 많으면 남길 것으로 본다고.
사돈께서는 그렇게 하면 아기가 변을 이상하게 본다고, 그러면 아기 속이 편한 것이 아니니,
앞으로 한 열흘간 이대로 가자고 했다.
낮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사위가 고부간의 갈등이 왜 생기는지 알것 같다고 했다.
의아해서 왜?
정보의 문제라고.
이 사람은 정보가 있어서 취약해서 정하는 것이고 엄마는 이제껏 아기 5명을 키워 오신
당신의 경험으로 만 이야기 하시는 것에서 출발 하는 것이라고.
조리원에 있어 보면 그곳에 일하시는 분들은 아기 트림도, 목욕도, 기저귀 갈아 주는 것도
전문으로 해 왔으니 정말로 수월하게 잘 하더라고,
전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경험은 또 얼마이겠습니까?
엄마처럼 구 세상의 경험보다 앞서는 세상이 되었다고 했다.
사돈 입장에서는 며느리 앞에서, 사돈 앞에서 민망하실 것 같아서
나는 딸 말도 맞다고 수긍을 했는데, 사돈 말씀도 맞다고 본다고,
그저 열흘정도 이대로 가다가 그 뒤 바꾼다고 해서 나쁠 것도 없다고, 이렇게 변을 잘 보던 아기가
변이 이상한 것을 우리가 변만 보고 알지만, 아기는 배속이 편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데,
아기를 고생 시킬 것이 없지 않을까?라 했다.
그리고 두 사람 사이는 갈등까지 가기 전에 다 해결이 될 것이라 했다.
딸은 나와 셋이 있어도 무슨 말이든 사돈 얼굴을 보고 말하고 웃으면서 말 힌다.
잘 하는 것이다.
나야 친정엄마이고 내가 저를 이해 할 것이라 믿고 그럴 것이다.
아기 낳기 전 언젠가 며느리와 병원을 갔더라 했다.
옆에 있던 사람들이 딸이요? 며느리요?라 묻더라고,
며느리라 했더니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서고,요새 저런 며느리가 어디 있노?
대기실에 기다리면서 소곤소곤 웃으면서 이야기 하는 것도, 움직일 때는 팔장을 끼고.
딸 없이 아들만 셋을 키우신 사돈은 나는 쟈가(우리 딸) 며느리가 아니고 딸입니다라 하셨다.
사돈께 정말로 감사드린다고도 하셨다.
저도 아들 얻었습니다라 답을 했고,
고부갈등은 기본적으로 있다.
그러나 갈등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시어머님과 그렇게 살았다.
뭣을 하겠다고 시어머님께 여쭈면 웃으시면서 그래 할라고? 하시면 하는 것이고,
웃지 않고, 하고 싶나? 하시면,
잠시 뒤에 어머님 않할려고요 라 했다.
시어머님도, 나도 맘을 비우고 그렇게 살아지더라.
시어머님은 지금도 내가 전화를 드리면 목소리가 아주 밝은 목소리로 에미가? 하신다.
70대 초반까지 다른 며느리가 일을 하면 보고 계셔도 내가 일을 하는 것은 꼭 도와 주셨다.
고부간에 갈등 없이 살아 지더라.
아마도 내 딸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본다.
이번에 내가 딸에게 한 말은 아무리 해도 세대차는 난다.
그냥 통째로 이해 해라.
앞으로 바깥 사돈이 돌아 가시고 혼자가 되시면 모실 것이라 했다.
내가 여기 오기 전 준서아빠인 큰 사위가 장기 외국 출장 중이었다.
이틀전에 그날 왔다면서 밤에 전화가 왔다.
25일 김장하러 집에 갔다가 다시 올 것인데, 그 때 왔다 갈 때는 너그들 집에 들릴 께라 했더니,
저가 모시러 가겠습니다라 했다.
작은 딸 집에서 큰 딸인 준서네로 갈 때는 꼭 준서에미가 오던, 준서아빠가 온다.
나도 에미라 작은 사위가 데려다 주는 것보다 더 좋더라.
돋보기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글쓰기에서는 12로 놓고 씁니다.
글자는 충분하게 보이는데도 저가 난시였던가 봅니다.
쓰 놓고 등록 했다가 다시 열었을 때 보면 평소보다 오자가 더 많습니다.
다른 블로그에서는 글자가 많으면 사진만 봅니다.
댓글도 적기는 하지만 대부분 적지 않습니다.
겨우 제방의 댓글에 답글정도 답니다.
이 집 컴퓨터에서는 오른 쪽 하단에서
120% 정도 글자 크기를 조절할려니 없고,
아이가 설정에 들어가서 활자를 키우니 화면이 좋지 않아서
그만두라 했습니다.
25일면 집에 가는데라면서요.
여전히 신새벽에 잠이 깨니 그럭저럭 포스팅은 하게 됩니다.
'샘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인연들 (0) | 2017.11.27 |
---|---|
청이끼로 난들 옷을 입히다. (0) | 2017.11.27 |
모피 옷 (0) | 2017.11.17 |
이해하고 배려 하는 사이 (0) | 2017.11.16 |
나도 너도 사람이어어서 (0) | 2017.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