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 온 뒤 풀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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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스탄 여아

이쁜준서 2012. 1. 9. 08:04

준서도 함께 텃밭친구와 함께 미장원에 갔습니다.

준서를 제일 먼저 긴머리 끝부분을 말고, 텃밭친구, 준서할미 순으로 말았지요.

 

우리가 보기에는 인도인 부부가 다섯살 여아와 여섯살 남아를 데리고 들어 왔지요.

한국에 온지 1년이 되었다 했고, 그 부모들은 쉬운 말은 한국어로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엄마가 염색 칠을 하고 있는 동안

다섯살 여아는 메니큐어칠을 하겠다고 했는지

그 아빠가 칠을 해 주었지요.

 

그 후 여섯살 남아는 아빠에게 메달려 지루해서 귀찮게 하고 있었고

그 여아는 혼자 앉는 자리에 앉아

손은 말린다고 손가락을 사이가 벌어지게 쪽 펴고는

어른들이 나오는 TV화면을 말도 알아 듣지 못하는 TV 화면만 쳐다 보고 있었습니다.

 

준서가 과자를 먹겠다고 해서

준서는 손톱을 말리는 중이라 준서할미가 입안에 넣어 주면서

종이컵에 과자를 담아 남자 아이에게 건넸지요.

손톱을 말린다고 과자를 먹으라고 남자아이가 컵을 내밀어도 도리질을 하고는

그렇다고 미장원 손님의자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 가는 것도 아니고,

아빠쪽으로 자꾸 쳐다 보는 것도 아니고, 있는 듯 없는 듯 앉아 있었습니다.

 

그동안 엄마가 염색이 끝나고는 또 펌을 하겠다 해서

머리를 말고는 우리 일행이 앉았던 소파로 와도

그 아이는 손톱도 말랐는데도 그 엄마에게 가지 않고 앉은 자리에 그냥 있었습니다.

그 아이들 아빠는 남자 아이에게 졸리다 못해 밖으로 나가고 없었지요.

 

준서가 몇개 먹다 말았던 과자를 종이컵에 담아 다섯살 여아에게 건네 주었지요.

준서할미가 묻는 말에 눈 표정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과자를 주고 그 아이 손이 닿을 거리에 있게 되었는데,

손가락으로 저를 살짝 살짝 찌르는 감이 있어 보았더니

빈 종이컵을 주었습니다.

저 보다 더 가깝게 사람이 있었어도.

 

휴지를 조금 뜯어서 입가도 닦아 주고,

손도 과자에서 나온 약간의 기름기를 닦아 주었습니다.

그 다섯살 여아는 제 몸에 손을 대는데도 과자를 준 친근감이 있어 그런지

눈빛과 얼굴은 웃는 표정이었습니다.

 

소파에 앉은 그 엄마에게 어디서 왔느냐? 누군가가 물었고,

파기스탄이라 했습니다.

 

준서는 준서가 네살 때부터 다니는 익숙한 미장원이기도 했고,

미장원에서 몇번 펌도 했고, 미장원 원장도 그 미장원 안의 분위기에도 익숙한 곳이긴 했으나,

머리 마는것, 머리 푸는 것, 컷드 하는 것, 염색하는 것등이 궁금증해서,

원장이 일하는 곳에 왔다 갔다 했고, 왜 그렇게 하느냐?고 묻기도 하고.

 

 전기 난로를 두개 씩 피워 놓았고,

사람들이 많아 졌을 때는 원장님 난로 때문에

너 다니면 신경 쓰인다고 했더니

미리 가지고 간 종이와 펜들을 내어 놓고 놀았지만,

준서도 얌전한 편이라도 파기스탄 여아와는 비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찌보면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은 잘 못 키우고 있다 싶기도 했습니다.

준서할미가 제 자식들을  키울 때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네살 아기적이라도 길가다 껍 종이 한장 버리지 않았고,

남의 집에 가면 얌전하게 앉아 있었고,

수박이라도 먹게 되고 미처 챙기지 못하면

수박씨를 뱉어 손안에 쥐고 있다가

버거우면 저에게 손을 살짝 보였지요.

 

우리 아이들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고,

우리 자식세대들은 거의가 그렇게 은연중 가정에서 훈육을 받았졌습니다.

남의 집에가면 그 파기스탄 여아처럼 행동했었지요.

아이 하나 둘을 키우는 요즈음은

조부모도, 엄마, 아빠도 아이보다 윗질의 사람은 없는 듯하고

어디에서도 궁금한 것은 물어야 하고

자기 주장이 당당한 아기로 어린이로, 청소년으로, 젊은이로 자랍니다.

 

어려서부터 갖고 싶은 장난감은 매번 다 살 수는 없지만,

몇개는 사서 갖고 놀게 키워졌습니다.

유치원아이나, 초등학생이나 여름이면 부모들이랑 휴가를 갔다 와

그 이야기에 섞일 수 있어야 하고,

장난감도, 놀이공원도, 여름휴가도 갔다 오지 못하면

동무들 사이에서 기가 죽는다 합니다.

 

비록 우리세대는

6,25전쟁으로 아버지가 돌아 가시고 편모 밑에 자랐어도

배가 차게  죽도 못 먹어도,

집에서 엄마 몰래 갖고 나온

고구마를 돌려 가면서 십여리길 학교 가는 길에 베어 물어도

하나 갖고 갈 것 없는 살림살이 집 아이도

같이 베어 먹었고, 기 죽지 않았습니다.

 

우리 손주세대를 잘 못 키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