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쪽은 열려야 한다.
달성습지의 겨울 풍경
오늘 컴퓨터가 부팅이 된 모니터 화면의 사진은 맘이 확 끌리게 했다.
깊게 말고 풍수지리라 할 것도 없이 예전 우리네 조상들은 사람이 살아 가기에는
뒷산이 있어야 하고 앞으로 좀 나가면 물이 있어야 해서( 자연에 의지해서만 살았기에)
배산임수라 했다.
아버지의 고향으로 가서 초등학교 고학년 3년만 살았지만, 홍수가 나면 방천둑이 터져서
그 마을에서는 상보라 불리는 들이 가장 넓었고, 평소에는 건천이다 홍수가 나면
사라호 태풍 때는 큰 개천의 위 쪽 멀리서부터 물은 불어서 내려 오고,
그 황토물에는 돼지도 떠 내려 오고 짚으로 이은 헛간지붕인지는 몰라도 통채로 지붕도 떠 내려 오고,
주민들은 그 마을에서는 제일 큰 들인 그 당시 상보라 불렀던 들은 끝내 둑이 터져서 농토는 황토물이 범람 했고, 물이 빠지고 나니 다 익어 가던 벼들은 손도 쓸수 없게 모래 자갈에 묻히어서 그해 벼를 수확 할 것이 없었다.
동네는 나무라도 하러 갈 양이면 동네를 빠져 나가 실개천(건천)을 건너서 산쪽으로 올라 가다보면
층계 논이 이어지고, 산 위에 보가 있어서 봇물은 내려 왔고, 한참을 올라가면 깊은 산이 이어지고
나무를 산에서 지겟짐으로 해 왔다.
진달래 피는 봄에는 나뭇지게 위에 진달래를 꽂아 오기도 했고,
또 봄이 익어서 깊은 산에 산나물이 자라면 동네 처자들과 젊은 댁들은 산나물을 하러
그 깊은 산에 갔다.
금호강의 겨울 철새
홍수가 지면 물난리에 둑이 터지기는 해도 동네 자체로 크게 보면 배산임수의 임수에 해당하는 큰 개천이 있어 상보들은 가무서라 타지 않고 농사를 지을 수 있었고,
배산임수의 배산에 해당하는 멀리 산으로 올가가서 나무를 해 와서 따뜻하게 난방도 하고, 밥도, 소죽도
끓이는 생활의 필수 화력을 얻을 수 있었다.
산은 든든한 어머니 같았다.
내가 오늘 사진 한장에 확 끌린것은,
항구를 주변으로 동네 뒷산은 능선이 5개정도 병풍처럼 이어지고, 앞의 내 항은 사과를 두손으로 감싸 쥐었을 때, 엄지로 열고 닫았다 하면 깊게 패인 것인 듯 한 것이 내 항이고 그 엄지를 열면 내항을 빠져 나와
바다로 이어지고,
사진 속의 풍경은 날씨가 쾌청한 산이 신록으로 반짝이는 계절의 사진이었다.
정말 그 동네로 가서 살고 싶어졌다.
이 무렵은 새벽 4시30분이면 겨울에도 걷기를 나갔다.
나가면 2시간여 걸었고,
강물에 햇살이 내려 앉았을 때,
이런 때를 두고 금물결이라 하겠다 싶다.
지난 날을 생각해 보면,
걷기운동을 참 즐겨 했다.
내가 게으럼을 부리지 않아도 멈추는 때도 있는 것을......
그렇다.
바람도 적당하게 불어야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닫지만, 열려 있어야 하고,
그래야 봄이 되고,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고 겨울은 쉼의 계절이 되는 것처럼,
그 모든 것에는 한 쪽은 열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김장 다 했다고 숙제 다 한 듯 했는데, 김장 하는 날 오전 10시경에 자경농이 파는 곳으로 가서
배추 5포기를 사 왔다.
절임배추 파는 댁에 물었더니,
사진으로 보아서는 채도 길지 않은 배추 6~7포기가 들어 간다 해서,
혹시 모자라면 5포기 더 담으면 김장이 모자라지 않겠다 싶어서 남편 몰래 사 온 것을
김장이 그 정도면 다시 양념 할 필요 없이 친구 2포기 주고, 배추3포기를 4조각으로 절여서 썰고,
무도 젖가락에 잘 집히게 걀쭉하게 썰고 해서 석박지를 담았고,
멸치 젓갈을 액젓갈로 내리고 있다.
준서할미의 방학은 아직 몇일 있어야 할 듯하다.
액젓갈 다 내리고 지꺼기 버리고, 그릇 다 씻고, 젓갈 냄새를 다 날려야 방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