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 전 일상으로 돌아 와
10년 전 사진이다.
이 무렵에는 폰의 화소가 높지 않을 때여서
작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날자가 나오게 했었기에 사진에 날자가 다 있다.
지금은 들에 나가도 이렇게 떡쑥이 모여 있는 것을 보기 어렵다.
이 사진을 찍은 들은 보상이 끝난 공단터여서 몇년간 농사 짓지 않는
들이여서 군데 군데 풀 속에 떡쑥이 있었다.
공단으로 된지가 거의 10년에 가깝다.
세계적으로 선진, 후진 할 것 없이
전쟁보다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오는 그런 병이 이 세상에 있을 것이라고
상상도 하지 않았던 어느 봄날의
일상으로 친구와 나는 이 들에서 쑥을 뜯었다.
친구에게 오랫만에 전화를 했더니, 뜬금 없이 블루베리를 아느냐 했다.
당연하게 알고 있는 블루베리를 묻기에 먹는 것 말인가?
우리 사돈이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데, 농협에서 품질 검사를 해서 가격도 책정 되고 믿을만 한데,
작년부터 부탁으로 친구들에게 팔아 주었다고 했다.
작년에 산 사람 중에서는 아직 출하도 하지 않았는데 11키로 부탁하는 사람도 있고, 작년에 산 사람들에게 필요한가 물어 볼려고 하는참이라 했다. (내년에 사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지금 외출 해야 되고 다시 전화 하겠다고 해서, 계좌번호, 주소 다 문자로 해도 된다 했다.
어제 전화가 왔고,
아이들 두 집에 각각 2키로씩 주문을 했다.
블루베리는 냉동실에 넣었다 한 줌씩 내어서 생과로도 먹고, 믹스기에 갈아서 우유나 떠 먹는 야구르트에 섞어서도
먹을 수 있어서.
어제 전화한 친구가 식당에서 밥을 먹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 필요한 일로 돌아 다니기는 해도 조심할 것은 최대한 조심한다고 했더니 7월달쯤 한번 만나자고 했다.
일상적이라면 1년에 서너번 만나서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했었는데, 자기는 식당 밥 먹고 다니는 모양인데,
내가 하지 않는다 하니 7월을 이야기 하는 것이였다.
새 동네로 이사를 와서 만났던 친구인데,
이사간지가 올 해로 18년차라 했다.
이웃 친구와 우리가 조금 더 젊어서 몇년 전에는 쑥을 뜯으러 3년 같이 다니고, 더 자주 만났는데,
쑥 뜯으러 다니지 않고는서너번을 아예 늘 가는 고기 식당에서 만나서 밥을 먹는 것으로 지내고,
우리 동네로 놀러 오면 우리 집이던 이웃 친구네에서 점심 식사하고 편안하게 놀았다.
우리는 이웃해 있어서 둘이서 자주 만나는데, 작년 가을 식당에서 밥을 먹고는 만나지 못해서,
이웃 친구가 자기 집에서 만나자 했다.
어린 손주가 있어서 며느리 일 하러 나가면 저녁에 어린아이 보아야 하는데, 며느리가 오늘은 가지 않으니
아지매들과 함께 저녁도 사 드시고 놀다 오시라 하더라 했다.
이웃해 살았으니 그 며느리 결혼하고 첫아이 낳고 시댁에 들락 거리면서 우리들과도 자주 보았으니
우리를 시어머니의 절친으로 알고 있어서이다.
이웃 친구집 거실에서도 우리는 마스크는 했지만,
이웃친구는 밥을 하고 해물찜과 묵은지를 내고 각자 앞 접시에 들어서 먹고, 컵은 1회용으로 , 젓가락도 나무젓가락을
사용 했지만, 코로나 19로 해금 전처럼 맘 편하게 오후 4시에 만나서 오후 8시가 넘어서 헤어졌다.
우리가 지나온 날의 글자그대로 일상의 일이였던 것이 현재는 특별한 것이 되였고, 쉽게 그 일상을 누리지 못한다.
조심이야 했지만 단 몇 시간이었어도 그 때의 일상처럼 거실에서 편안한 맘으로 지낸 시간이었다.
시골 친정집이 비어 있어서 도시의 집은 가끔 주말에 나오고 작년에 시골에 들어간 친구가 있다.
부탁으로 옆집에 오이 농사를 한다고 오이를 사다주고, 마늘이 싸다고 일부러 전화해서 마늘 사라고 하더니
이웃 친구네도 필요하면 사주께라 하더니 자기 남편차에 싣고 주말 집에 오면서 사다 주었다.
작년에도 건고추, 참깨, 들깨를 사서 우리 대문 앞까지 가져다 주었다.
굳이 부탁을 하지 않아도 서로 서로 챙기면서 살아 왔다.
어제 온 친구에게는 요즘 오이가 흔해 빠진 것인데도 50개 샀다고 15개를 맛이 있으니 깍아 먹는다 하면서
물방개 같은 가방에 넣어 주었다.
큰 아이들이 대학생 때 한 동네에서 만난 사이라도 어릴적 고향 친구처럼 정이 든 친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