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

무스카리

이쁜준서 2020. 3. 12. 12:36

 


 

끼니를 시답잖게 하니 정신을 다른 곳에 팔지 않은 무념의 상태에서는 정오가 되기 전에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픈 것이 식욕이 있는 것과는 달라서 점심에는 밥을 차려서 먹지 않고, 고구마도, 때로는 떡도,

먹었는데, 이 비상 시국에서는 이틀에 한번꼴로 라면을 끓인다.

오늘 남편은 라면, 나는 고구마를 찌고 있다.

그 배고픈 것을 블로그 글 쓰면서 20여분의 시간을 넘기면 군주전버리 하지 않고 고구마만 먹어도 된다.


할아버님은 여든 여섯살, 할머니는 여든 다섯인 노부부가 계신다.

할아버님은 우리나라 대형문고 의 문화교실에서 논어 강사를 하실 정도로 고등학교 교사를 명퇴하시고도

늘 한문 공부를 하셨고,  작은 텃밭을 일구어서 농사도 지으시고, 매일 근처 야산 걷기도 하셨고,

집에 종일 들어 앉아 있는 날이 없어셨다.

이번 코로나 19사태도 3남매 자식들이 나가지 마시라 해도 답답해서 나가셔야 하니,

한 사람이 걸리면 두 사람다 걸리는 것이고, 혼자 나가시면 혹여  싶어서 늘 같이 산책을 나가신다.

말하자면 보호자 격으로 따라 나서시는 것이다.


그러시더니 전철을 타고, 내려서 마을버스를 타고 가면 당신의 이름으로 등기가 된 밭이 있고,

그 밭에 매실나무를 다 심어서 쌈채소, 쪽파, 대파, 시금치 정도 두분이 드실 것을 심기도  하고,

농사보다 그곳에 가면 산 위라 그렇게 공기가 좋다고 했다.

어제 전화 통화를 했는데, 혼자 한번 밭에 다녀 오셨는데, 내일 또 간다하니 내가 같이 가서,

손에 고무잡갑도 끼고 마스크도 하고 단도리 하고 일 하시게 따라 갈 것이라 했다.


나는 죽는 것은 언제 가도 되는데, 자식들 얼굴도 못 보고 허무하게 가기  싫다 하셨다.

이번에 가서 뽑아 오고는 나머지는 포기 하시라고, 산책 나가셔서 작은 동네 슈펴에서 반찬거리 사 오신다

하셨으니 그렇게 채소가 기러운 것도 아니고요라 했다.

나차럼 나가지 않고, 방콕할 수 있는 것도 다행인 것이다.

누구에게 보탬이 되는 일을 하기에는 늦은 나이이고, 나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 자식들에게도, 나라에도

보탬이 되는 것인데, 세상과 스스로 격리되게 사는 것이 우울하다 하면 않되는 일이다 싶다.

죽고 사는 일이 걸린 것이다.


무스카리가 꽃대가 올라 오고 있다.

가을에 올라 온 잎사귀가 25cm정도 자라서 겨울을 났다.

물론 추웠으니 초록이 희끄럼한 초록의  잎색이었고, 지금 보이는 잎은 그 잎 밑에서 봄이라고 새로

자란 것이고, 윗부분을 잘라 내었다.

낙엽 들어가 있는 것도 손으로 주웠고, 바닥에 붙은 풀들도 뽑아 주었다.

스스로 꽃대를 올리고 봄을 준비하는 것에 내가 도와주었던 것이다.

꽃대가 올라 오고 꽃이 피면 앙증스럽고 이쁘다.


이 아이들은 그 겨울도 살기를 포기 하지 않고, 잎사귀까지 건사하면서 살았다.

그리고 이젠 봄이라고 꽃대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