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다

이쁜준서 2018. 9. 27. 16:32


2010년 다육이 연봉


우리 세대들의 숙제가 산소를 벌초를 하지 않아도 되게 정리 하고, 차사나 기제사를 정리  하고 가야 된다는

무거운 짐을 진 세대이다.

산소는 야산 등산을 하다 보면 8여년 전부터 윤년이 들면 선산의 윗대 조상묘를 이장을 해서 다시 화장을해서

분묘을 없에고, 평장으로 해서,

어떤 분이다란  글을 써 놓은 작은 비석으로 표시하는 선산 정리가 이루어 지고 있다.

아니면 가족 납골당을  만들어서 어떤 가문에서는 넓직하게 해 두어서 우리 자식대까지도 그 납골당에 갈 수

있다는 친구도 있다.

지금도 윤년이 들면 산소를 그렇게 정리  하는 가문들이 늘어 난다.

그렇게들 하고 있고, 우리집처럼 선산에는 조부모님대까지는 선산에 묻혀 계시고, 시아버님 대에서는

화장으로 봉분도 없으신 분  우리 시아버님처럼 공원묘지에 묻히신 분들이 계신다.

우리는 시아버님 한분이라서 시어머님께서 내가 죽거든 너그 아버지 산소 이장해서 화장을 해서

나는 납골당도 싫으니  훌훌 자연으로 보내 달라 하셨다.



2012년 다육이 연봉


젊은 세대들은 맞벌이기도 하고, 자식세대들이 서울이나 수도권에 살고들 있으니 기제사는 참석하지

못한다고 부모 세대들이 포기를 한지 오래이다.

그러니 같은 도시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도 기제사에 참석하지 않아도 무방하게 지낸다.

그런데 명절 차사는 아직도 우리 세대가  체력에 상관 없이 제수 지낼 재료를 사고, 손질해서 익히고,

전을 부친다.

차사에 오르는 익힌 음식이 일이 많기로는 주로 전을 부치는 것이다.



2014년 다육이 연봉

이 무렵 장대비가 간간이 섞인 연일 비가 왔다.

비가 연일 오니 다육이 연봉은 색이 빠지고,

은빛이 되었고,

은빛에 빗방울이 구슬처럼 맺혀 있는 모습은

은빛이 왜 아름다운지를 보여 주는 듯 하다.


인터넷 한 줄 기사에 보면 시어머니가 시댁에 갔더니 종일 전을 부치라 했다고,

명절에 시댁에 가면 일만 종일 해야 해서 가기 싫다고 ,

명절에 시댁을 다녀 오면 다투게 되고 그래서 어긋나서  이혼까지 한다고들 한다.


우리 세대 시어머니들이 맘 비운지 오래 인데,어쩌다 며느리에게 전을 종일 부치라 하고,

종일 일을 하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가 모르지만, 다들 며느리 자식들이 아기들 데리고 오면,

혼자서 착착 일만 하면 능률적인데, 아들 가족이 오면 식사까지 챙기고 손주들 뛰고 번거로워서

명절 아침에나 오라고 한다는 시어머니들이 다수이다.


인터넷  기사 한 줄에,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고, 여자는 같은 편(생각) 이 된다고?

제목이 특이해서 클릭을 했더니,

추석에 시댁을 같더니, 시어머니께서, 산소도 다 이장을 해서 납골당에 모셨고,

이제 앞으로 차사나 기제사를 없엣다고 하시더라 했다.

당장 이번 추석부터도 차사가 없었다 한다.

자기 남편은 3남매의 아들만 혼자이라 했다.

그래도 아버지 산소 벌초하고 차사에 참석하고등은 아직까지 게을리 한 적도 없고,  그만한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씀을 시어머니께 들은 아들은 기가 차 했다고 한다.

내가 할 수 있는데 우리에게 의논도 하지 않고, 왜 그러셨나고 따지기도 했다고 했다.

그런데 실은 며느리인 자신은  홀가분 하다고 생각되었고, 지금까지 시어머니가 며느리인 자기 편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같은 여자로서 공감대가 생기고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고,

차사 , 기세사 모시는 것의 어려움을 같은 여자로서 시어머니가 아시니 해결 해 주셨다 싶더라 했다.


또 어제 본 인터셋 기사 한 줄에,

며느리인 자기가 시댁에 가기 싫어서 가출을 해서 있을 곳을 마련하고,  자기 먹을 음식 조금 만들어서

수입 맥주 사 먹고 혼자서 쉬었다 했다고,

내년에는 돈을 모아서 해외 여행을 갈 것이라고,

집에 갔더니 남편은 시쿤둥하고, 어린 자식들이 엄마 왔다고 반가워 야단이었다고,

그 기사를 보면서 차라리 시댁에는 가기 싫다 당신 혼자 당신 집에 갔다 오라 하면서

그 어린 자식들과 함께 집에서 보냈으면 좋았겠다 싶으기는 했으나,

얼마나 답답하면 어린 자식도 안중에 없고, 가출을 했다가 왔을까? 싶었다.

손주들의 할미인 나는 그 돌아 왔다는 말에, 싸우자고 덤비지 않고, 참고 시쿤둥하기만 했다는

그 남편에게  고마웠다.

왜?

어린 아이가 있어서 이다.



2018년 다육이 연봉

다육이 2,000원 하는 작은 폿트의 것을 2010년에 들였다.

키우다 보니 너무 크게 자라서 2015년에 작은 것 2개를 떼어내어 뿌리를 새로  내었다.

그 때부터 4년차인데 이렇게 식구를 불리고,

폭염시에 10여개의 다육이가 물러서 고사 했는데,

보초란 다육이와 연봉만 살았다.

구석진 곳에서 화분과 화분사이에서

9월들어서니 햇빛도 멀어지고, 비단풀이란 잡초는

수염처럼 늘어지고 한 것을,

손질해서 기특하다고 햇빛 하루 종일 드는 자리로 옮겨 주었다.

다육이 연봉이 색이 곱게 나면

두번째 사진처럼 참 곱다.


세상은 변했다.

예전 법도를 지킨다는 것은 지금의 세상 살이에서 어렵다.

맞벌이 하고, 자식 건사하고, 집안 살림 살이 하고 여자들이 참 힘든 세상 살이이다.

그러다 보니 예전 남자들처럼 내 몰라라 못하니 남자들도 어렵다.

일단 내 가족이 화목해야 한다.

명절에 엄마가 가출하고 할머니 댁에는 아빠하고만 못가서 아빠하고 제대로 먹을 것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없었다 보면  그 아이들의 맘으로 입는 상처는 어쩔려고?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니라는 어느 며느리 말처럼,

요즘 시어머니들 그들끼리는 자기들이 살았던 시집살이에 비하면  요즘은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치보는

며느리 살이 한다고 하니 말이 통하지 않는 막무가내 시어머니는 아닐 것이다.


내 머리 속에는 늘 차 차 세대인 우리들 손주들 어린아이들, 청소년들이 생각난다.

맘에 상처 받지 않게 잘  키워져야  한다.

시댁에 명절에 가지 않는 것이  무슨 대수라고, 가기 싫으면 안가면 된다.

가면 며느리라서 아무리 하지 않으려해도 자기 집에서 처럼 보다야  설겆이도 하고 일이 많다 싶어서

죽어도 가기 싫으면 안 가면 된다.

시어머니들과 대화를 하려 들면 서로가 통한다고 본다.


시어머니가 되는 우리 세대들은 겪고 또 겪고 한다.

얹은 짐이 무겁다 싶어서 같은 동서들 중에 유독 나만 힘들게 사나? 싶은 40대 50대도 지나 왔다.

그렇게 살아 와서 노년이 된 지금은 건강해서 일을 도 맡아 했던 시절이 더 좋았다 싶은 것이다.

그렇게 인생을 깨우쳐 가는 세대가 또 노년인 우리 세대들이다.

그러니 며느리들보다 희노애락의 세월은 살아 왔다.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