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골 100세 과연 살 만한 것인가?
여든셋, 여든 여섯, 아흔 넷,
세분의 집안 어른들께 인사 전화를 드렸다.
여든 셋의 이모님은 삼남매 자식들에게 독감을 앓고 있으니 오지 말라고 전화 했고, 이제 겨우 고비를 넘긴 상태이신 듯 했다.
여든 여섯의 친정 숙모님은 아가씨 손녀딸과 사신다.
직장 생활이 있고, 청춘이다보니 아침 밥은 아예 먹지 않고, 저녁 밥은 회사 일을 하면서 먹고 오고,
그것도 대개는 할머니가 잠드신 한 밤중에 오고 특별히 새벽처럼 일찍 나가야 하는 때도 있고,
손님이라면 한끼니 식사라도 같이 하는데 손님보다 더 못한 동거하는 가족일 뿐이다.
독감이 들었을 때, 혼자 병원 다니고, 따뜻한 물 한모금 줄 사람도 없이 고생을 하셨다는데,
독감이 아주 아픈 고비가 있고, 회복기까지 한달이 걸리더라 하셨다.
분명 자식은 남매를 낳아 결혼까지 시켰는데, 삼촌이 돌아가신 후 다들 이민을 가 버렸다.
아흔 넷이신 우리 시어머님께서는 혼자 사신다.
같은 도시에 살고 계신데,
우리가 끝에서 끝에 살고 있고, 가깝게 막내 아들, 딸 둘이 살고 있다.
아기 하늘이 집에 와 있으니 전화를 드렸다.
감기가 들어서 한달 정도 되었는데, 링겔도 여러번 맞았고, 경노당에 못 가신지가 한달이 넘었다 하셨다.
이제 회복기인 듯 해도 아직은 음성에서 편찮으신 것이 느껴졌다.
면역력이 떨어지시니 어르신들이 독감에 드신 거다.
지병으로 잡수시는 약만해도 몇가지가 되고, 노인성 당뇨, 소양증, 등등의 생각지도 않았던 지병이 더 해 지고,
몸으로 고생을 하시면서 살아 가신다.
골골 100세 과연 살 만한 것인가?
살만하던 살지 못하던간에 어찌 살아가던 살아야 한다.
시집을 농사 짓던 농가로 오셔서 그대로 그 고향 땅에 사시는데, 자식들은 결혼을 하고 인근시에서 살고 있다.
두 딸들은 어머니를 모시고, 인근 도시 경주로 온천으로 모시고 가기도 하고, 즈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와
승용차로 멀지 않아서 자주 들어가 살펴 드리고 나온다 했다.
식사는 주로 동네회관에서 동네 노인들이 함께 드신다고 했다.
그러니 도시 노인들보다 나은 편이셨다.
그러나 도시 노인들보다 신체는 더 늙어서 혼자 맨 몸으로는 서지 못하시고, 유모차 비슷한 것에 몸을 의지
하시기는 하다.
도시에서 사셨던, 시골에서 사셨던
지금 현재 도시에서 사시던, 시골에서 사시던, 성인병 약은 다 잡수시고, 정기적으로 동네 의원이나
보건소에 가셔서 약을 타서 잡수신다.
그래서 수명은 길어졌으나 실제 신체는 골골 100세 시대인 것이다.
나도 노년이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올 1년은 아기 하늘이를 돌보아 주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골골 100세에 발 들여 놓은 사람이다.
살아 가면 갈 수록 내 앞에 놓여진 그 한 길은 더 분명해 질 것이고,
자력으로는 늦추지도 멈추지도 못하는 그 한 길을 담담하게 받아 들이는 맘 공부도 해야하고,
시골 초가 삼칸도 사람 손이 자주 가면 덜 사그라 진다.
남은 시골 초가 같은 인생에 맘도 몸도 누추하지 않게 노력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